슬픈날의 편지/이해인

2007. 5. 2. 05:36사진과 함께 좋은글과 시/꽃사진과 좋은글

슬픈날의 편지

 

 

 

 

 

모랫벌에 박혀 있는
하얀 조가비처럼
내 마음속에 박혀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슬픔 하나
하도 오래되어 정든 슬픔 하나는
눈물로도 달랠 길 없고
그대의 따뜻한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다른 이의 슬픔 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듯이
그들도 나의 슬픔 속으로
깊이 들어올 수 없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지금은 그저
혼자만의 슬픔 속에 머무는 것이
참된 위로이며 기도입니다

 

 

 

 

 

 


슬픔은 오직
슬픔을 통해서만 치유된다는 믿음을
언제부터 지니게 되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항상 답답하시겠지만
오늘도 멀찍이서 지켜보며
좀 더 기다려 주십시오

 

 

 

 

  

 

 


이유없이 거리를 두고
그대를 비켜가는 듯한 나를
끝까지 용서해 달라는
이 터무니 없음을 용서하십시오

 

 

  

 

 

 

 

 


이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