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방울꽃

2008. 5. 24. 06:14동식물 사진/식물,초목본,수생식물

 

 은방울꽃

 

 

 

 

 

 

 

 

 

 

 

 

 

 

 

 

 

 

 

 

박하사탕- 이해의 향기 

  - Paul Villiard, 류해욱 신부 역


  내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 즉시 떠오르는 가장 행복한 추억은 위그든 할아버지의 사탕 가게이다. 내가 처음 그 가게에 들렀던 것은 네 살 가량 되었을 때였으니, 이미 반세기가 훌쩍 지났지만 나는 그 가게에 놓여 있던 사탕들이 풍기던 향기를 지금도 코끝으로 느낄 수 있다. 당시 우리는 시애틀에 있는 대학로에서 살았는데 레바나 공원 전차 역까지는 200m 정도 떨어져 있었고, 전차를 타기 위해서는 오고 가는 길에 그 사탕가게를 지나야 했다.

  어느 날 어머니는 볼 일을 보시기 위해 시내에 가시면서 나를 데리고 가셨다.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는 위그든 할아버지의 가게 안으로 들어가시면서 말씀하셨다.

  “네가 오늘 착하게 잘 따라다녔으니 맛있는 것을 사 주마.”

  어머니께서는 나를 긴 유리 진열장 앞으로 데리고 가셨다.

  현관 출입문에 달린 작은 종이 땡그랑거릴 때마다 위그든 할아버지는 조용히 나타나서 사탕 진열대 뒤에 서셨다. 그분은 아주 연세가 많았고, 백발이 성성했다. 그분은 커튼 뒤에서 나타나셨다. 어머니께서 잠시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시는 동안 나는 내 눈 앞에 펼쳐져 있는 진열대를 바라다보았다.

  이전에는 그런 달콤한 유혹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몰랐고, 다른 것을 포기하는 일이 고통스러울 지경이었다. 상상 안에서 각 사탕의 맛을 가늠하면서 하나씩 훑어보았다. 한 가지를 골라 종이봉투에 담을 때마다 다른 것이 더 맛있지 않을까, 아니면 다른 것이 입에서 더 오래 녹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후회가 스쳐갔다. 위그든 할아버지는 혹시 내가 고른 사탕을 바꿀지도 모르기 때문에 눈을 깜빡거리며 잠시 기다렸다가 손으로 가리키는 사탕을 한 숟가락씩 떠서 봉투에 담았다. 어머니는 나를 위해 당신이 몇 개를 더 고르셨다. 계산대에서 돈이 지불된 후에야 봉투는 노끈으로 봉해지고 더 이상 바꿀 수 있는 기회는 사라져 아쉬운 마음만이 남았다.

  어머니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시내에 볼 일을 보러 나가셨다. 당시는 아직 아이를 돌보는 보모를 두는 집은 거의 없었고,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나는 늘 어머니를 따라 함께 나가야 했다. 시내에 따라 나가는 동안 내가 말썽을 부리지 않고 착하게 굴어 어머니의 마음에 들게 하면 내게 주는 상으로 사탕 가게에 들르곤 하였다. 나는 그 상을 받을 기대를 하면서 되도록 얌전하게 어머니를 따라다녔고, 시내에 나갈 때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게 되었다. 처음 사탕 가게를 들린 이후 어머니는 언제나 내가 사탕을 고르도록 해 주셨다.

  당시 나는 너무 어려서 아직 돈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내가 손에 만졌던 돈은 어머니나 아버지나 그분들의 친구 분들이 돼지 저금통에 넣으라고 주신 동전뿐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가게의 계산대에서 반짝거리는 동전들을 주고 물건이 담긴 봉투를 받는 것을 바라보면서 서서히 내 마음 안에 조금씩 사람들이 서로 어떤 것을 교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모험을 결행하기로 했다. 혼자서 집에서 전차 정류장이 있는 방향으로 150m 쯤 떨어져 있는 위그든 할아버지의 사탕 가게에 다녀오는 것이었다. 나도 이제 혼자 나갈 만큼 컸다고 생각했다. 단지 문제는 내 주머니 사정이었다. 그런데 나는 아직 주머니 사정 때문에 겁날 나이가 아니었다. 나는 사탕을 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창한 어느 날 오후 나는 혼자서 거리를 따라 가게를 찾아 나섰다. 나는 내가 온 힘을 써서 커다란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갈 때 댕그랑거리며 나던 작은 종소리를 기억한다. 위그든 할아버지는 커튼 뒤에서 나와서 내게 미소를 짓고 나를 내려다보셨다. 나는 사탕을 맛 볼 생각에 마음이 들떴지만 태연한 척하며 사탕이 있는 진열대를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앞줄에는 갖가지 향이 나는 박하사탕 종류가 있는가하면, 뒤쪽으로는 깨물어 먹으면 부서지면서 입안을 상큼하게 하는 드롭프스 종류가 있었다. 다음 칸으로 옮겨가면 작은 초콜릿 캔디 바가 있었다. 그 상자 뒤에는 입 안에 넣으면 볼이 툭 불거져 나오는 커다란 눈깔사탕이 있었다. 나는 이 눈깔사탕을 제일 좋아했다. 빨지 않고 그냥 입 안에 넣고 있으면 오후 내내 나를 즐겁게 하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알록달록한 눈깔사탕은 마치 양파를 까도 다시 다른 켜가 나오듯이 이 사탕도 빨아먹어도 이어서 층층으로 다른 색을 지니고 나타나는 것이 신기했다. 한참 후에 어떤 색이 나타나는지를 보는 즐거움이 컸다. 사탕을 입 안에 넣고 녹이다보면 맨 나중에 사탕 한 가운데는 호두나 땅콩이나 코코넛 같은 나무 열매가 나타나곤 했다. 흑설탕과 땅콩 조각을 섞어서 만든 땅콩과자도 있었는데 일 센트에 작은 나무 숟가락으로 두 숟가락이었다. 목에 걸어도 될 만큼 긴 줄사탕도 있었다. 하나씩 떼어 먹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내가 진열대의 반 쯤 지나 왔을 때, 이미 내 종이봉투는 내가 골라서 집어넣은 사탕으로 가득 찼다. 위그든 할아버지는 허리를 굽혀 진열대 너머로 나를 내려다보면서 물었다.

  “너 이것을 다 살 돈은 있니?”

  나는 대답했다.

  “예, 물론이지요. 저는 돈이 많아요.”

  나는 주먹을 펴서 위그든 씨의 손에 체리 씨 여섯 개를 올려놓았다. 나는 그 체리 씨를 은박지 랩으로 잘 포장했었다.

  위그든 할아버지는 서서 자기의 손바닥을 바라다보더니 한참 동안이나 조심스럽게 나를 훑어보았다.

  내가 불안해하면서 여쭈었다.

  “모자라나요?”

  그분은 부드럽게 한 숨을 쉬시고는 대답하셨다.

  “아니다. 조금 남는다. 거스름돈을 주마.”

  그분은 계산대 뒤쪽에 있는 서랍을 열고 1 센트짜리 동전 두 개를 꺼내어 벌리고 있는 내 손에 올려놓으시고 사탕봉투를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이것을 한꺼번에 다 먹으면 안 된다. 그러면 배탈 나고 이가 썩는다. 조심해라.”

  어머니는 내가 혼자 밖에 나간 것을 아시고 다시는 혼자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꾸지람을 하셨지만 사탕에 대해서는 별 말씀이 없으셨다. 나는 미리 허락을 받지 않고 다시는 밖에 나가지 않도록 주의를 받았을 뿐이었다. 어머니께서 돈이 어디서 나서 사탕을 살 수 있었는지 묻지 않으셨다. 나는 그 이유를 잘 모른다. 다시는 체리 씨를 사용하여 사탕을 산 기억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그 후에 허락을 얻고 사탕을 사러 나갈 때는 동전을 받아서 나갔던 것 같다. 사실상 이 일이 나에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고, 성장하면서 곧 잊혔었다.

  그런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어떤 계기로 다시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면서 이 일의 여파가 내 삶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나는 결혼하여 사내아이 둘을 키우고 있었다. 나는 아내 젤뚜르다와 함께 열대어 가게를 하고 있었다. 가게에는 열대어를 부화시키고 기르는 부화장도 딸려 있었다. 당시 관상용 열대어를 파는 일은 막 시작된 단계의 사업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열대어들을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의 지역에서 직수입해야 했다. 한 쌍에 5 달러 이하의 열대어는 거의 없었고, 비싼 것은 한 마리에 250달러가 넘는 것도 있었다. 사실 가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집이 곧 가게였다. 따라서 거실에 진열 어항이 두 줄로 놓여있었다.

  어느 화창한 오후에 나와 아내 젤뚜르다는 바쁘게 부화장의 어항을 청소하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리고 땡그랑하는 작은 종소리가 들렸다. 꼬마 아이 둘이 들어왔다. 하나는 여섯 살 가량의 여자 아이였고, 다른 하나는 5살 쯤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였다. 여자 아이가 물었다.

  “예쁜 물고기들을 파시지요?”

  내가 그렇다고 하자, 꼬마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좀 볼 수 있을까요?”

  나는 두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가 지금 어항을 청소하느라고 무척 바쁘단다. 나중에 오지 않겠니?”

  여자아이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스치는 것을 보았다. 여자아이가 말했다.

  “우리는 꽤 먼 거리를 왔는데요.”

  내가 물었다.

  “어디에서 왔는데, 그러니?”

  “우리는 넬슨 가에 살아요.”

  넬슨 가는 우리 집에서 대략 300m 쯤 떨어진 곳이었다. 나는 300m이면 이 꼬마 아이들에게는 먼 거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말했다.

  “그래. 그러면 이리 와서 봐라.”

  두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수정처럼 맑은 물 안에서 노닐고 있는 보석같이 아름다운 열대어들을 바라보았다. 사내아이가 소리쳤다.

  “와아! 예쁘다. 우리 몇 마리 살 수 있지요?”

  “물론 살 수 있지. 그런데 값이 아주 비싸단다.”

  여자아이가 말했다.

  “우리 돈 많아요. 아빠가 제 생일 선물로 주셨거든요.”

  나이가 어려서 아직 잘 모르면서 갖는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들으며 왠지 모르게 아주 특별한 어떤 느낌이 들었다. 다른 때, 다른 어느 곳에서 이와 똑같은 장면을 본 것과 같은 약간 오싹한 기분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자기들이 갖고 싶은 물고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순간, 다시 아주 강하면서도 친근한 느낌을 받았다.

  아이들은 어항들이 놓여 있는 거실을 따라 얼굴을 어항에 가까이 대고 발걸음을 옮기면서 몇 가지 다른 물고기들을 골랐다. 나는 아이들이 고른 물고기를 작은 걸망으로 건져서 휴대용 비닐봉지에 담아 넣으면서 말했다.

  “너희들, 이 물고기 아주 조심해서 가져가야 한다.”

  사내아이가 내 손에서 봉지를 받으면서 고개를 끄떡이고 여자아이에게 말했다.

  “누나가 돈 드려.”

  내가 여자아이에게 손을 내말자 자기의 움켜진 주먹을 내게 내밀었다. 그 순간 아주 분명하게 친근하게 느껴지던 느낌이 무엇이었는지 알았다. 위그든 할아버지의 사탕가게에서 나던 향기가 향수(鄕愁)로 느껴지면서 내 콧잔등을 스쳤다. 나는 이제 그 여자아이가 어떻게 할지, 무슨 말을 할지 정확하게 알았다. 그녀는 내 손바닥에 5 센트짜리 동전 두 개와 10 센트짜리 동전 하나를 올려놓았다.

  그 순간 나는 아주 오래 전 위그든 할아버지가 나에게 해 주었던 일이 어떤 것이었는지 충격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제야 내가 위그든 할아버지에게 던졌던 도전이 어떤 것이었고, 그것을 그분이 얼마나 지혜롭게 받아들이셨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위그든 할아버지가 바라다보던 눈을 의식하며 작은 사탕가게에 서 있는 것처럼 느꼈다.

  나는 내 손에 놓여 있는 동전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동전이 아니라 내가 은박지로 잘 쌌던 체리 씨였다. 나는 이 두 아이의 순진무구함과 그것을 지켜 줄 수도 있고, 무너뜨릴 수도 있는 힘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위그든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으로 목이 메어왔다. 내가 잠시 상념에 빠져 있자, 작은 여자아이는 근심스러운 얼굴 표정에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모자라나요?”

  나는 목에서 침을 삼키고 소리를 가다듬으면서 말했다.

  “아니다. 조금 남는구나. 여기 거스름돈이 있다.”

  나는 아이의 손에 1 센트짜리 동전 두 개를 쥐어 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보물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물고기가 든 비닐 봉투를 가지고 가는 것을 바라다보았다. 눈이 아파왔다.

  방 안에 들어오자 아내 젤뚜르다가 어항 안에 있는 식물을 정리하느라고 팔꿈치를 물속에 넣은 채로 서서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 봐요.”

  그녀는 따지듯이 말했다.

  “당신 아이들에게 물고기를 몇 마리나 주었는지 알아요?”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으면서 말했다.

  “대략 30 달러어치쯤 되지. 그러나 나도 달리 어쩔 수 없었다오.”

  내가 위그든 씨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자, 아내도 눈시울을 적시고 내게 다가와서 내 뺨에 부드럽게 입 맞추어 주었다.

  “나는 아직도 위그든 할아버지의 가게 박하사탕의 향기를 맡을 수 있어.”

  내가 남은 어항을 닦기 위해 어깨를 돌리는 순간 위그든 씨의 너털웃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Missing...James L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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