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궁남지

2011. 8. 19. 19:03전국 방방곡곡 여행지/충청도 여행지

 

부여 궁남지

 

부여 남쪽에 위치한 백제의 별궁 연못이다.

백제 무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궁궐의 남쪽에 연못을 팠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근거로 궁남지라 부른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20여 리나 되는 긴 수로를 통해 물을 끌어들였고,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었으며 연못 가운데에 방장선산을 상징하는 섬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수로와 물가·연못 속의 섬이 어떤 모양으로 꾸며져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못의 중앙부에 석축과 버드나무가 남아있어 섬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주변에서 백제 토기와 기와 등이 출토되었다. 연못의 규모 또한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당시에 뱃놀이를 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 크기를 짐작할 뿐이다.

 

 

 

 

고대 중국사람들은 동해바다 한가운데에 일종의 이상향인

신선이 사는 3개의 섬으로 삼신산이 있다고 생각하여,

 정원의 연못 안에 삼신산을 꾸미고 불로장수를 희망했다고 한다.

궁남지는 이것을 본떠 만든 것으로 신선정원이라 불린다.

 

 

 

 

연못 동쪽에 당시의 별궁으로 보이는 궁궐터가 남아 있다.

 현재 연못 주변에는 별궁 안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우물과 주춧돌이 남아있고,

 연못 안에는 정자와 목조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섬은 30여년 전에도 못의 중앙부에 석축과 버드나무가 남아 있어서

주변 주민들이 이것을 뜬섬이라고 부르고 있었으며,

그 주변으로부터는 토기와 기와 등 백제시대의 유물이 출토되고 있었다.

이 섬이 바로 방장선산을 모방했다고 하는 섬으로 판단된다.

 

 

 

 

궁남지의 동편에는 화지산(花枝山)이라는 낮은 산이 있다.

그 서쪽 기슭, 즉 궁남지로 면하는 완만한 경사지에는

대리석으로 바닥으로부터 팔각형으로 쌓아올린 우물이 남아 있고,

그 주위 일대에는 많은 기와조각이 흩어져 있다.

 

 

 

 

 

이 자리는 백제의 사비정궁의 남쪽에 설치되었다고 하는 이궁(離宮)터로 추정된다.

 이것으로 보아 궁남지는 이궁의 궁원지(宮苑池)로 꾸며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우리 나라의 궁원지로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삼국유사 기이(紀異) 제2 무왕조에는

궁남지에 관한 다음과 같은 설화가 실려 있다.

제30대 무왕의 이름은 장(璋)으로 그의 어머니가

과부가 되어 서울 남지변(南池邊)에 집을 짓고 살던 중,

그 못에 사는 용과 정을 통하여 장을 낳고 아명(兒名)을

서동(薯童)이라 하였는데, 그 도량이 커서 헤아리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이 설화는 무왕의 출생동기를 미화하기 위해 지어낸 것으로 보이나,

지금도 이 부근에 사는 사람들은 이 못을 마래못 또는 마래방죽이라고 부른다.

여기에서의 마는 마감자, 즉 서여(薯?)를 가리키는 말로서

무왕의 아명 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명칭이다

 

 

 

 

 

이 연못은 백제의 조경수준을 엿볼 수 있는 사적으로 일본서기에는

 궁남지의 조경기술이 일본에 건너가 일본조경의 원류가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자료출처`문화재청,한국민족문화대백과

 

 

 

 

 

 

 

 

 

 

 

 

 

부여궁남지

주소~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17
전화~041-830-2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