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서울의 최초의 공원인 탑골공원(파고다공원)

2011. 9. 14. 12:46서울 어디까지 가봤니?/서울 여행지

대한민국 서울의 최초의 공원인 탑골공원(파고다공원)

 

 

탑골 공원(塔골公園)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2가에 있는 공원이다.

예전에는 파고다 공원으로 불렸으며 면적은 19,599 m²이다

. 수도권 전철 1, 3, 5호선이 만나는 종로3가역과 가깝다.

서울에 마련된 최초의 공원이며,

한국에서 한국인을 위해 처음으로 만들어진 공원이다.

탑골 공원은 고종 때 원각사 터에 조성한 최초의 공원이다.

 탑골이라고 불린 것은 최근의 일이고 이전에는 탑이 있는 공원이라고 해서

 영어식 발음으로 파고다라고 했다. 일제에 대한 최대 규모의 민족 저항운동이었던

 3·1 운동이 이 곳에서 시작되었다. 원각사지 10층 석탑은

현존하는 대한민국 국보지정 석탑 가운데 가장 후대에 속하는 것으로

그 형태와 평면이 특수하며, 모두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수법이 세련되고 화려해 조선시대 석탑 중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최근에는 노인들의 휴식처로 각광받고 있으며,

할아버지들이 시원한 부채바람과 함께 얘기를 들려주고

주역 책을 펴놓고 무료로 사주팔자의 행운도 점쳐준다.

 

 

 

 

 

 

원래 이곳은 고려 때 흥복사가 있었고, 조선 세조

조선 세조 13년(1467년)에 자신이 행한 살생을

참회한다는 뜻에서 원각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연산군이 기생놀이 장소를 바꾸면서 원각사가 폐사되고

 중종 때 건물이 철거되고, 사찰의 종은 남대문으로 옮겨졌다.

중종 때 그곳에서 일하던 관리가 의문사한 뒤로

부처님이 보호한다는 믿음이 주변에 퍼져 있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는 황폐화되었으나, 다만 ‘백탑’(白塔, 원각사지 석탑의 별명)만이

 서울 시내 어디에서나 눈에 잘 띄었다고 한다.

고종의 명을 받은 영국인 브라운이 조선 고종 34년인

1897년 서양식 공원으로 만들어서 1920년 대중에게 개방하였다.

브라운은 1893년 조선에 입국하여 총세무사, 도지부 고문으로 일하면서

조선 정부의 재정과 관련한 일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다가 폐허로 변한 원각사지를 공원으로 바꾸자고 건의하여 허락을 받았다.

 이는 김홍집 내각 때부터 서울의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있었고,

고종아관파천을 한 뒤에 경운궁 중심의 도시 정비를 바랐기 때문이다.

아울러 서울 시민이 가장 모이기 쉬운 곳으로서

주변에 장시가 서고 있었다는 점도 공원 개설에 큰 역할을 하였다.

고종은 공원에서 민의가 수렴되는 등 언론의 장이 되기를 바랐다고 한다.

처음에는 파고다 공원이라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탑이 있는 그 주변을

탑동 또는 탑골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사람들은

곧잘 탑공원, 탑동공원, 탑골공원으로 불렀다고 한다.

 

 

 

 

 

 

 

이 공원은 3·1운동의 발상지로 여겨지며,

이곳에서 학생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외친 곳이다.

 1991년 10월 25일 사적 제354호로 지정되었고,

1992년 5월 28일 탑골 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또한 공원 내에는 원각사지 십층석탑(국보 제2호),

대원각사비(보물 제3호), 독립운동 봉화에 불을 당겼던

탑골 공원 팔각정(서울 시도유형문화재 제73호) 등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3·1운동 기념탑, 3·1운동 벽화, 의암 손병희 선생 동상, 한용운 선생 기념비 등이 있다.

 

 

 

 

 

 

 

 

 

 

 

 

3·1운동 기념탑,

 

 

의암 손병희 선생 동상

 

 

 

 

 

 

 

대원각사비(보물 제3호)

 

 

 

 

 

발굴출토우물

 

 

 

 

 

 

 

탑골 공원 팔각정(서울 시도유형문화재 제73호)

 

 

 

 

 

 

 

 

 

원각사지 십층석탑(국보 제2호)

문화재보호 측면에서 이해는 가지만 유리벽이 답답해 보이는건 어쩔수 없습니다.

 

 

 

 

 

공원담장길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