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아름다운길 걷기] 덕수궁돌담길~ 정동로터리~선원전터

2011. 10. 19. 06:30서울 어디까지 가봤니?/서울 걷기 좋은길

[서울의 아름다운길 걷기] 덕수궁돌담길~ 정동로터리~선원전터

 

덕수궁길 혹은 덕수궁 돌담길은 덕수궁의 둘레에 있는

돌담 밖에 있는 사람들이 산책하기에 알맞은 길이다.

덕수궁길은 덕수궁 정문에서 시작해

서울시립미술관 앞 분수대까지 이어진다.

서울의 대표적인 산책길인 이 길에는 전설이 있다.

 

 

 

 

 

 

덕수궁 돌담길 전설이란, 사랑하는 두 남녀가 덕수궁 돌담길을

 함께 걸으면 오래지 않아 헤어지게 된다는 전설이다.

그러나 실제로 덕수궁 돌담길을 걸은 뒤 이별한 연인들이 많은지는 확인된 바 없다.

 이 이야기는 과거 덕수궁의 후궁들 가운데 왕의 승은을 받지 못한 여인들의 질투가

연인에게 씌어진다는 전설이다. 그러나 이것보다 좀 더 설득력 있는 이야기는

덕수궁을 지나면 과거에 가정법원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덕수궁 돌담길 북쪽에는 대법원과 서울가정법원이 있었다. (현재 시립미술관건물)

그래서 연인이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가면 곧 가정법원으로 가는 길이라는 공식이 성립하면서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가면 이혼한다.' 라는 이야기가 성립되었기에 완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동로터리

조선시대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이

 현재의 정릉동으로 옮겨가기 전에 있었던 것에 연유하여 정동이라 하였다.

덕수궁을 비롯해서 구한말의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 많은 곳으로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학교인 배재학당이화학당,

한말 정치인과 구미() 외교관들의 사교장으로 이용되던

손탁호텔, 러시아제국의 공관 등이 이곳에 있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을 대표하는 낭만의 거리 덕수궁 돌담길에 위치한

서울시립미술관은 년중 상설 전시및 자체기획전시로

시민들이 문화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현재 외벽 보수공사중에 있다.

 

 

 

 

 

 

 

정동교회 (貞洞敎會) 사적  제256호

고종 광무 2년(1898)에 준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개신교 교회건물이다.
본래는 십자형으로 115평이었으나 1926년 증축 때

양쪽 날개부분을 넓혀서 현재는 175평의 네모난 모양을 이루고 있다.

 원래 건물은 그대로 두고 양 날개 부분만 늘려지었기 때문에 건물의 원래모습에는 손상이 없다.

 벽돌쌓기를 하였으며, 곳곳에 아치형의 창문을 내어 고딕양식의 단순화된 교회당 모습을 이루고 있다.

돌을 다듬어 반듯하게 쌓은 기단은 조선시대 목조 건축의 솜씨가 배어있어 주목된다.
이 교회당의 종은 장식없는 내부 기둥들의 겉모습과 함께 소박한 분위기를 지니기 있다.

 소박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 북미계통의 단순화된 교회건물이다.

 


 

 

정동극장

정동극장(貞洞劇場, Chongdong Theater)은 전통문화의 보존,

계승발전 및 공연예술 진흥사업에 기여하기 위하여

1996년 11월 15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재단법인으로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된 복합 공연장이다.

국내 최초의 근대식 극장인 원각사의 복원을 이념으로

1995년 국립중앙극장 분관으로 설립되었으며,

이후 재단법인으로 독립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이영훈노래비

故 이영훈 작곡가는 '옛사랑''사랑이 지나가면''광화문연가'

 '굿바이''붉은 노을''기억이란 사랑보다' 등의 노래를 작곡해

 1980년대 가요계를 풍미한 인물로 2008년 대장암으로 사망했다.

 문화 예술인들은 그의 공적을 인정해

정동길에 이영훈을 추모하는 노래비를 건립했다.

 

 

 

 

 

 

 

 

 

 

 

 

 

정동로터리에서 선원전터로 가는 덕수궁 돌담길

 

 

 

 

 

 

 

 

정동갤러리,구세군중앙회관

 

 

 

 

 

 

 

 

 

선원전터

덕수궁의 서족에 위치한 선원전(20세기 초까지 조선조 역대 임금들의 영정을 모시고 제를 지낸곳)

일제강정기에 우리의 민족혼 말살을 위한 정책으로 일제에 의해 서쪽 선원전 터에는 도로가 뚫렸다.

지금의 미국대사관저와의 사잇길이다. 1922년 도로 서쪽으로 떨어져나간

 엄비의 혼전을 헐고 옛 경기여고 교사가 지어졌다.

이듬해에는 그 맞은편에 지금의 덕수초등학교 교사가 지어졌다.
현재 경기여고 자리는 공터로 있고 덕수초등학교는 지금도 선원전터 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