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침략의 현장으로서 역사적 교훈을 주는 목포 구 일본영사관 (사적 제289호)

2012. 4. 11. 06:30전국 문화재와 박물관/국가지정 문화재

 

 

일제 침략의 현장으로서 역사적 교훈을 주는 목포 구 일본영사관 (사적  제289호)

 

조선 광무4년(1900)에 건립되어 1907년까지 일본 영사관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1914년부터 목포부청사, 1974년부터 목포시립도서관, 1990년부터 2009년까지 목포 문화원으로 사용되었다.

해안에서 1㎞ 가량 떨어진 유달산 기슭에 위치하며, 붉은 벽돌을 이용한 2층의 르네상스 양식 건물이다. 건물 평면은 장방형으로 중앙 바깥쪽으로 현관을 두었고, 내부 바닥을 나무로 구성하였으며, 우진각 지붕으로 이루어졌다. 대리석으로 치장한 벽난로와 당시 사용하던 거울 등이 원형 그대로 잘 남아있다.

일제 침략의 현장으로서 역사적 교훈을 주는 교육의 장으로 보존가치가 있다.


조선 광무4년(1900)에 건립되어 1907년까지 일본 영사관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1914년부터 목포부청사, 1974년부터 목포시립도서관, 1990년부터 2009년까지 목포 문화원으로 사용되었다.

해안에서 1㎞ 가량 떨어진 유달산 기슭에 위치하며, 붉은 벽돌을 이용한 2층의 르네상스 양식 건물이다. 건물 평면은 장방형으로 중앙 바깥쪽으로 현관을 두었고, 내부 바닥을 나무로 구성하였으며, 우진각 지붕으로 이루어졌다. 대리석으로 치장한 벽난로와 당시 사용하던 거울 등이 원형 그대로 잘 남아있다.

일제 침략의 현장으로서 역사적 교훈을 주는 교육의 장으로 보존가치가 있다.

 

 

 

 

 

 

 

 

 

 

 

 

 

 

 

 

 

 

 

 

 

봉안전터

봉안전은 일제 강점기에 한국인을 황국신민으로 만들기 위해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강요하면서 관공서, 학교 등에 천황의 사진,

칙어등을 모셔놓고 신사참배를 하지 못할때 대신 참배 하도록 했던 곳이다.
이 봉안전은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철옹성같은 한평 남짓한 건물 이었다.

 

 

 

 

 

일제 방공호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공습과 상륙에 대비하기 위해 일제가

 한국인을 강제 동원해 파놓은 인공 동굴로서, 한국인의 피땀이 배어있는 곳이다.

내부 전체 길이가 82미터 정도로 높이는 2미터, 폭은 넓은 곳이 3.3미터 가량이며, 출입구는 모두 3개이다.
현재 목포에 남아 있는 여러 개의 다른 방공호에 비하여 길이가 길고

형태기 정교한 것으로 보아 전쟁시 매우 긴요한 목적과 기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