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ㆍ1절 그날의 함성이 시작된 근원지 사적 제354호 탑골공원 [3ㆍ1 만세운동 역사유적지]

2017. 3. 1. 00:01전국 문화재와 박물관/국가지정 문화재





3ㆍ1절 그날의 함성이 시작된 근원지 사적 제354호탑골공원 [3ㆍ1 만세운동 역사유적지]





1919년 3ㆍ1 대한독립만세운동 함성이

 시작된 근원지인 탑골공원은 서울도심

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도심공원으

로 로 한복판에 위치하며 고종이 민심

수렴하려는 목적으로 영국인 브라운

이 설계해 조성한 현대식공원이다 3ㆍ1

대한독립만세운동 당시에 공원 안에서는

 시민과 학생들이 가득 운집힌 가운데 팔

각정에서 학생대표 정재용이 독립선언문

낭독한 후에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며 종로거리로 달려 나갔다

서울거리는 순식간에 감격 흥분의

가니가 되었으며 이는 파도와 같아 삼일

운동은 전국적으로 번져 나간다 비

력 만세운동은 조선총독부의 기록에

의하면 1백6만여명이 참가하였고 사상

자는 7천5백여명이며 구속자는 4만7천

여명이 이르는 범국적인  3ㆍ1 대한

만세운동이였다 이를 계기로 상해임시
부가 수립되어 활동을 시작하였고 외교

와활동과 함께 독립운동을 발판으로 하

여 1945년에 광복을 맞아 자유를 찾는다 





























3ㆍ1 만세운동기념탑





독립선언서









손병희선생동상




1919년 3월1일 독립선언서 낭독을 했던 팔각정














1919년 3월1일 오후2시 이곳 탑골공

수천명의 생들이 학생대표 정재용

독립선언낭독이 끝난뒤에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달려 나가니 서울은

순식간에 감격 흥분의도가니가 되었고

그대로 파도와 같이 삼일만세운동은 전국

적으로 퍼져 나간 근원지인 탑골공원이다





1919년 3월1일 정오 평양 기독교 신자들은

종소리가 울리자 장댓재 예배당으로 모여

들어 고종황제의 추도식후에 거리로 달려

나가 천도교인들과 합세하여 왜경의 총탄

을 무릅쓰면서 대한독립만세운동을 하였다






1919년 3월1일 천안고을 병천시장

서 수천명 군중이 독립선언식과 함께

만세를 불럿다 주모자 유중천 20

명은 현장에서 참살되었으며 유관순

열사는 일경에 체포되어 옥중에서

독한 고문에 항쟁하다 마침내옥사했다






1919년 3월1일 저 멀리 제주도에서도

남녀 군중과 학생들이 일어나 만세를

불럿다 일본경찰의 총칼에 맞서 만세

운동의 행진은 한사람도 굽힘이 없었다


















국보 제2호 원각사지 십층석탑









보물 제3호 원각사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