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백리향/도종환
2005. 7. 28. 00:03ㆍ사진과 함께 좋은글과 시/꽃사진과 좋은글
경기도 어느 초등학교엔가 계시는 선생님께
섬백리향을 선물 받아 가지고 와 기르면서
나도 이 꽃처럼 살 수 있다면 하고 생각했다
척박한 땅 가리지 않고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고
잎 전체에서 나는 향기로 나쁜 벌레 오지 않고
화려하지 않아도 향기가 백 리까지 간다는
이 꽃만큼만 살았으면 싶었다
그러나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잎이 마르는 듯싶어 너무 자주 물을 주고
꽃은 안 피고 줄기가 처지는 듯싶어
손떼를 많이 묻히고 그래서인지
얼마 못 가서 죽고 말았다
내 마음 어느 구석에 너무 지나치거나
너무 모자라는 데가 있어서
조급하게 자랑하고 싶거나 은근히
내세우고 싶어서 어린 꽃을 힘들게 하다
공연히 꽃만 죽인 꼴이 되었다
향기를 가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척박한 땅에 살면서 향기롭게 산다는 게
아무나 되는 일이 아니다
섬백리향/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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