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아깨비 [가을 바람 / 이해인]

2005. 10. 10. 00:02동식물 사진/곤충,양서류,파충류

 방아깨비

 

 

숲과 바다를 흔들다가

이제는 내 안에 들어와

나를 깨우는 바람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를 키워놓고

햇빛과 손잡는

눈부신 바람이 있어

가을을 사네

 

 

 

바람이 싣고 오는

쓸쓸함으로

나를 길들이면

가까운 이들과의

눈물겨운 이별도

견뎌낼 수 있으리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사랑과 기도의

아름다운 말

향기로운 모든 말

깊이 접어두고

침묵으로 침묵으로

나를 내려가게 하는

가을 바람이여

 

 

하늘 길에 떠가는

한 조각 구름처럼

아무 매인 곳 없이

내가 님을 뵈옵도록

끝까지

나를 밀어내는

바람이 있어

 

 

나는

홀로 가도

외롭지 않네

 

 

가을 바람 / 이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