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9. 14. 06:00ㆍ사진과 함께 좋은글과 시/좋은글과 시
권정생 선생이 돌아가시고 난 뒤 조탑리 노인들은 많이 놀랐다고 한다.
혼자 사는 외로운 노인으로 생각했는데
전국에서 수많은 조문객이 몰려와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우는 걸 보고 놀랐고,
병으로 고생하며 겨우겨우 하루를 살아가는
불쌍한 노인인 줄 알았는데 연간 수천만 원 이상의
인세수입이 있는 분이란 걸 알고 놀랐다고 한다.
그렇게 모인 10억 원이 넘는 재산과
앞으로 생길 인세 수입 모두를
굶주리는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조목조목 유언장에 밝혀 놓으신 걸 보고 또 놀랐다고 한다.
동네 노인들이 알고 있던 것처럼 권정생 선생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병들고 비천한 모습으로 살다 가셨다.
세속적인 욕심을 버렸고 명예와 문학권력 같은 것은 아예 꿈도 꾸지 않으셨다.
10여 년 전 윤석중 선생이 직접 들고 내려온
문학상과 상금을 우편으로 다시 돌려보냈고,
몇 해 전 문화방송서 ‘느낌표’라는 이름으로 진행했던
책 읽기 캠페인에 선정도서로 결정되었을 때도 그걸 거부한 바 있다.
그때 달마다 선정된 책은 많게는 몇백만 부씩 팔려나가는
선풍적인 바람이 불 때였는데
권 선생은 그런 결정 자체를 번잡하고 소란스러운 일로 여기셨다.
권정생 선생이 사시던 집은 다섯 평짜리 흙집이다.
그 집에서 쥐들과 함께 살았다.
선생이 돌아가시고 난 뒤 찾아간 집 댓돌에는
고무신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는 그 고무신을 보고 울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신발과 옷을 생각하며 부끄러웠다.
그래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새로운 신을 사들이고
다시 구석에 쌓아두면서 더 큰 신장으로 바꿀 일을 생각하는 우리의 욕망,
우리는 앞으로도 내 욕망의 발에 맞는
신발을 찾아다니는 삶을 살 것임을 생각하며 민망했다.
- 도종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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