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창공원 백범 김구 선생의 묘와 삼의사 묘 백범 김구 기념관

2009. 6. 15. 00:07우리 문화예술 공연전시 /문학관,미술관,기념관

 

효창공원 백범 김구 선생의 묘와  삼의사 묘 백범 김구 기념관

 

 

1924년 경기도 경성부(지금의 서울특별시)가 효창원 일부를 공원으로 조성하여 순환도로, 공중변소까지 갖추면서 8월 일반에 공개하기도 했다. 1944년 효창원이 경기도 고양으로 이장되면서 이름만이 남았다. 해방 후인 1946년 박열, 이강훈 등 아나키스트계 독립 운동가들이 3의사의 유골 수습을 촉구하여 '3의사국민장봉장위원회'를 발족하고 중국 상하이 훙커우공원(지금의 중국 상하이 루쉰공원)에서 당시 일본왕 히로히토의 생일 행사 때 물통폭탄을 투척한 매헌 윤봉길 의사(義士)와 일본 도쿄에서 일왕 히로히토를 폭사(爆死)시키려다가 미수에 그쳐 일본군에 의해 사형당했던 이봉창 의사, 중국 상하이에서 당시 주중(駐中) 일본 대사를 저격하려 했다가 실패하여 옥사(獄死)했던 구파 백정기 의사(義士)의 유해가 국내에 공식 운구되어 삼의사묘(三義士墓)에 안장되기도 했다.

실제 삼의사묘에 가보면 유골이 없는 가묘(假墓)가 있는데 그 묘소에는 1909년 중국 하얼빈 기차역에서 일본의 정치가이자 한국 침략의 원흉으로 불리웠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유골이 안장될 묘소라고 한다. 안중근 의사는 사형되기 전 유언에서 "내가 죽으면 내 유골을 하얼빈 공원에 묻었다가 대한의 독립이 되거든 조국으로 나의 유골을 운구해달라" 라고 남겼지만...허나 순국한지 한 세기가 지나고 해방이 된 지 7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안중근 의사의 시신은 커녕 유골의 행방도 찾지 못하여 표류하고 있는 중.[1][2]
만약 안중근 의사의 유골을 찾게 되어 삼의사묘에 안장될 경우 묘소 명칭이 '사의사묘(四義士墓)' 로 바뀔 듯 싶다.

동시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출신이었던 이동녕, 조성환, 차이석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으며 역시 삼의사묘와 마찬가지로 3인의 유해와 이름을 새겨넣은 비석들이 있다. 다만, 삼의사묘와는 달리 별도의 가묘는 없다.

1949년에는 백범 김구가 서울특별시 경교장에서 암살됨에 따라 국민장을 통해 그의 시신이 운구되어 안장되기도 하였다. 2002년에는 백범 김구의 생애와 업적 등을 기념하는 백범 김구 기념관이 설립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