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충의(報勳忠義)가 깃들인 곳 국립서울현충원

2012. 6. 6. 06:00서울 어디까지 가봤니?/서울 여행지

 

 

보훈충의(報勳忠義)가 깃들인 곳 국립서울현충원

 

 

국립서울현충원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순국한 호국영령들을 국가에서 안치한 묘지를 관리하는 국방부 소속기관이다.<국립묘지령>은 그 첫 조항에서 ‘군인·군무원으로서 사망한 사람과 국가에 유공한 사람의 유골 또는 시체를 안장하고, 그 충의(忠義)와 위훈(偉勳)을 영구히 추앙하기 위하여 국방부장관 소속하에 둔 묘지’라고 정의하고 있다. 국립묘지는 1955년 7월 15일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관악산 줄기 43만여 평(142만㎡)의 대지에 설립되었다. 1986년 현재 무명용사 11만여 위를 비롯하여 모두 16만여 위의 순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다. 민족적 수난인 6·25전쟁으로 전몰한 국군장병들이 이름없는 넋이 되어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던 것을 한 곳에 안장하기 위하여 국군묘지가 설치되었다.

1954년 육군공병단에 의하여 착공되어 1955년 7월 15일 국군묘지가 설치되었으나, 그 준공은 1957년에 있었다. 처음 이 국군묘지의 안치대상은 전몰한 군인에 한하였으나, 1965년 3월 30일 대통령령 제2092호 <국립묘지령>에 의하여 국립묘지로 그 격을 높이고, 안장대상자 범위도 국가에 유공한 민간인에까지 확대하였다.

 

 

 

 

 

 

 

안장대상자의 범위는 ① 현역군인, 소집중의 군인 및 군무원으로서 사망한 자, ② 군복무중 전투에 참가하여 무공(군사상의 공적)이 뚜렷한 자, 장관급 장교 또는 20년 이상 군에 복무한 자 중 전역·퇴역 또는 면역된 뒤 사망한 자로서 국방부장관이 지정한 자, ③ 국장 또는 국민장으로 장의(장례)된 자, ④ 국가 또는 사회에 공헌하여 공로가 뚜렷한 자 중 사망한 자로서 국방부장관의 제청에 의하여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지정한 자, ⑤ 전투에 참가하여 전사한 향토예비군 대원과 임무수행중 전사 또는 순직한 경찰관, ⑥ 대한민국에 공로가 뚜렷한 외국인 사망자 중 국방부장관의 제청에 따라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지정한 자 등이다.

1970년 1월 이 영의 개정에 의하여 이 일대를 성역으로 지정하여 한층 미화단장하였고, 1998년 2월 28일 국립묘지란 명칭을 국립현충원으로 개칭하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 지역은 조선시대 단종에게 충절을 바쳤던 사육신(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성삼문, 박팽년)의 제사를 모시던 육신사(六臣祠)가 있던 곳으로 전하여지며 보훈충의(報勳忠義)가 깃들인 곳이다.

지형적으로는, 관(冠)을 쓴 듯 봉우리가 솟았다 하여 관악산이며, 붓끝과 같이 뾰족한 형세라 하여 문필봉(文筆峰)이라 일컬어지는 산세로 감싸여 있다. 이들 산세 속의 펑퍼짐한 지형을 ‘동작포란형(銅雀抱卵形)’이라 하여 동작이 알을 품고 있듯 상서로운 기맥(氣脈)이 흐른다 하였다. 또한, 전면을 흐르는 한강수가 용트림하듯 흐르고 있어 한층 미관을 더하고 있다.

국립묘지의 정면에 들어서면 충성분수탑이 우뚝 서 있고, 금잔디가 깔린 광장을 지나면 현충문(顯忠門)과 현충탑(顯忠塔)이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이 현충탑 안에는 11만여 무명용사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위패실과 납골당이 있으며, 이를 가호하고 있는 애국투사상이 좌측에, 호국영웅상이 우측에 있다.

이 탑을 중심으로 동서묘역에 국가유공자 묘역, 애국지사 묘역, 장군 묘역, 장교사병 묘역, 경찰관 묘역 등 신분별로 약 5만 위가 정연하게 잠들어 있다. 동작동 묘지시설로는 안장식을 거행하는 현충관(顯忠館), 유품과 전리품을 전시하는 기념관이 있고, 관기관급의 국립현충원장 아래 관리과·전례·현충선양의 3과를 둔 사무소가 있다.

 

 

 

 

 

 

현재 국립묘지에는 초대·2대·3대 대통령을 역임한 이승만(李承晩)과 제5·6·7·8·9대대통령을 역임한 박정희(朴正熙) 및 영부인 육영수(陸英修)가 안장된 것을 비롯하여, 전 국무총리 이범석(李範奭), 전 민의원의장 곽상훈(郭尙勳) 등 각계 저명인사들이 묻혀 있다. 해마다 영령들의 충절을 기리는 참배객들이 늘어 1980년대에 들어와서는 연평균 600만 명이 넘고 있다.

한편, 정부는 묘역확대의 일환책으로 1985년 11월 13일 대전시 갑동 산36번지에 국립묘지 대전분소를 설치하였다. 1998년 2월 28일 국립대전현충원으로 격상시켜 이사관 또는 부이사관으로 원장에 보하도록 하였으며, 그 아래 관리과·전례과 및 현충선양과를 두고 있다.

계룡산을 태조산(太祖山)으로 하고 그 맥을 이어받은 조종산(祖宗山) 문필봉과 한 갈래에 선 주산 옥녀봉(玉女峰)의 좌우능선에 쌓인 98만 평(323만 7천㎡)의 터에 마련되었다.

1977년 4월 착공하여 8년 6개월 만에 준공된 이 분소는 동작동 국립묘지의 갑절이 넘는 규모에, 묘역은 8만 4000평이다. 현충문·현충관·현충탑 등의 시설이 동작동 국립묘지와 똑같은 형태로 건설되었다. 1986년 이후의 영령들은 주로 이곳에서 영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