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대중가요 노래비 "목포의 눈물 노래비"

2010. 9. 17. 00:00전국 방방곡곡 여행지/전라도 여행지

유달산은 목포를 상징하는 산으로 목포를 찾는 관광객은 꼭 한번 둘러보는 곳 입니다.

목포의눈물 노래비는 이 유달산 중턱에 세워져 있습니다.

이곳에 오르면 푸른바다에 둘러싸인 목포시가지, 유달산의 수도하던

선비를 사모하던 세 처녀가 섬으로 변했다는 전설이 있는 삼학도와

다도해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유달산은 해발 228m의

높지않은 산으로 목포시민이 즐겨찾는 유달산은 정상까지 돌계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 삼학도 파도깊이 숨어드는데 /

부두의 새악시 아롱젖은 옷자락 /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

 

1930년대 가수 이난영씨가 불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노래 '목포의 눈물'입니다.

1934년 조선일보사는 일제의 탄압으로 억눌려 있던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서를 북돋우기 위한

문화사업의 하나로 향토 신민요 노래가사를 공모했는데,

목포 출신인 문일석씨의 가사가 당선되었고,

작곡가 손목인씨가 곡을 붙여 '목포의 눈물'노래가 탄생하게 됩니다.

'목포의 눈물'은 음반이 출시되자마자 대히트를 기록하였으며 전국적으로 알려져

오늘날까지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부르는 대표적인 목포의 노래입니다.

 

 

 

 

유달산 기슭에 세워진 이 비는 1969년 목포악기점을 하는

박오주(朴午周)씨가 기증하여 세워졌습니다.

이 노래비는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가요 노래비로서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유행가로 나라 잃은 슬픔을 달래던 이 노래가 지금까지도 널리 애창되고 있습니다.

목포의 눈물'은 그래서 목포시민들에게는 흘러가는 단순한 유행가가 아닌 것입니다.

문의는 유달산공원 관리사무소 : TEL. 061-270-8357

 

 

 

 

 

 

 

 

 

 목포 유달산 오포대는 목포시 유달산 입구의 이충무공 동상 남쪽에 있습니다.

예전에 오포는 포탄 없이 화약만 넣고 포를 쏘아,

시민들에게 정오가 되었음을 알려주는 기능을 하였습니다.
처음의 포는 조선식 선입포로 현종 10년(1669)에 제작되었는데,

경기도 광주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합니다.

1913년 일본식 대포를 구입하여 새로 배치하였으며,

그전의 대포는 송도신사에 보관하던 중

일제 말기 일본이 전쟁수행을 위한 공출로 신·구 오포를 걷어가 버렸다고 합니다.

1988년 12월 다시 이를 복원, 당시 오포대에 전시하고

지방문화재 제 138호로 지정·보존하고 있습니다.

 

 

 

 

 

 

 

 

 

 

 

 

 

 

 유달산에서 내려다본 목포 시가지 입니다.

일제가 수탈을 위해 목포항을 개항하면서 바다를 매립해

일본인 거주지로 사용했고 지금도 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