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들이

2011. 2. 25. 13:55사진과 함께 좋은글과 시/좋은글과 시

 

 

 

 

 

 

 

 

 

 

 

 

 

 

 

봄나들이 / 정 양

 

지긋지긋한 이 아파트 말고
  어느 산기슭 어느 시냇가에
  집 하나 이쁘게 짓고 사는 것이
  아내는 소원이라 한다
  말 못하는 짐승들도 기르고
  오가는 새들 모이도 뿌려주면서
  채소랑 곡식이랑 감 대추를 다 가꾸어
  고맙고 다정하고 아까운 이들과
  골고루 나누고 싶다고 한다
 
  그런 소원쯤 언젠가 못 들어주랴 싶고
  사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서
  그런 산기슭 그런 시냇가를 틈날 때마다
  눈여기며 나는 늙는다
  먼 길 나다니는 차창마다 그런 산천을
  먼발치로 탐내는 것이, 부끄럽지만
  어느새 버릇이 되어 있다
  천해지는 건지 철이 드는 건지
  부끄럽기는 마찬가지다
 
  햇빛 바르고 물길도 곱고 바람 맑은 곳
  혼자서 점찍어보는 그런 그리운 데가
  나다니다 보면 참 많기도 하다
  점찍어보는 데가 너무 많은가
  간이라도 빼주고 싶은 아내에게
  간 빼낼 재주가 나에게는 영 없는가
  간도 쓸개도 뱃속에 있기나 한가
 
  모처럼 아내와 나선 봄나들이
  나이 들수록 속절없이 산천은 곱다
  꽃범벅으로 점찍어보는 그리움들이
  먼발치로 자꾸만 외면하면서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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