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바르게하고 마음을 가다듬는 천년고찰 팔공산 은해사 #2
2011. 4. 20. 00:14ㆍ전국 절집이야기/사찰(寺刹) 이야기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팔공산(八公山) 기슭에은해사는
신라 헌덕왕 원년(809)에 혜철국사가 해안평에 창건하였고
조선 명종 원년 (1546)에 천교화상이 이곳으로 이건하였다.
조계종 제10교구 본사로써 백홍암,운부암,중암암,
기기암등 8개의 암자를 거느린 천년고찰이다.
팔공산 동쪽기슭에 자리잡아 산세와 계곡이 수려하여
등산이나 가벼운 산책을 즐기며 둘러보기에 더 없이 좋다.
조용한 산사에서 몸을 바르게하고 마음을 가다듬는 템플스테이로
가슴속에서 전해지는 조용한 울림을 경험해 볼 수 있다. 문의는 05)335-3318
은해사대웅전(銀海寺大雄殿)
은해사는 통일신라 헌덕왕 1년(809)에 해안사라는 이름으로 혜철국사가 지었다. 조선 명종 1년(1546)에 천교화상이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세우면서 은해사로 불렀는데, 그 뒤 여러 차례 화재로 건물이 많이 소실되었다. 1919년 크게 넓혀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절 경내에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보화루, 심검당, 설선당 등의 건물이 있다.
대웅전은 세운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고 19세기 중엽에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현판 글씨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쓴 것이라 전한다.
대웅전은 세운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고 19세기 중엽에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현판 글씨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쓴 것이라 전한다.
은해사는 신라(新羅) 헌덕왕(憲德王) 원년(元年)(809) 혜철국사(惠哲國師)가 현 운부암(雲浮庵) 아래 해안평(海眼坪)에 해안사(海眼寺)로 창건되었으나 조선(朝鮮) 인종원년(仁宗元年)(1544)에 대화(大火)를 입어 명종원년(明宗元年)(1545)에 천교화상(天敎和尙)이 현위치로 옮겨 중창하였다. 그러나 명종(明宗)18년(1563)의 대화(大火)와 그 후 수차례의 화재로 건물이 많이 소실되었다.
1919년 지석담주지(池石潭住持)에 의해 대중창이 이루어져 현재의 틀을 갖추게 되었으나 근년에 대대적인 중창불사로 과거의 모습은 많이 잃었다.
과거의 가람배치는 사천왕문(四天王門)과 보화루(寶華樓), 대웅전(大雄殿)이 축상에 배치되면서 좌우에 강당인 설선당(設禪堂)과 심검당(尋劍堂), 종무소(宗務所)가 중심영역을 이루고 있었으나 현재는 사천왕문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중층루각이 자리하고 있어 중정의 아늑함과 고태는 상실하였으나 산지중저식배치(山地中底式配置)방법은 지키고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이며 내부는 우물마루를 깔고 내진주(內陣柱)에 의지해 불단(佛壇)을 만들었다. 정면 창호구성을 보면 어칸은 4짝 여닫이문으로 좌우협칸은 3짝 여닫이문을 달았다. 구체부, 즉 주고를 높게 잡은 관계로 문높이가 높아 정첩이나 돌저귀로 지지하기가 어려웠던지 내측에 둔테를 달아 개폐토록하였으며, 개폐방식도 독특하다. 그리고 좌, 우측면 전면칸에 외짝여닫이문을 두고 배면어칸에도 문을 설치하였으나 좌측면 문은 후면칸에 설치되었으나 근년에 전면쪽으로 옮긴 듯하다.
기둥상부는 창, 평방을 설치하고 정면 주간포(柱間包)는 2구(區)씩, 측면 주간포는 1구씩을 얹은 다포작(多包作)으로 꾸몄으며, 공포구성은 외(外)4출(出) ·내(內)6출목(出目)이다.
일반적으로 내출목이 외출목보다 1출목 정도 더 설치되는 것이 상례인데 반해 여기서는 2출목을 더 설치하여 지붕구배를 급하게 잡았다. 이는 사찰이 자리한 부지가 평지인 경우 자주 채택되는 법식으로 건물고를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보여진다.
불단상부는 낙양각이 조각된 보개(寶蓋)를 얹고 용(龍) 과 단조(단鳥) 및 비천상(飛天像)으로 장식하였으며 대량(大樑)위에 걸친 충량(衝樑)머리는 용두(龍頭)를 조각하였는데 조선말기의 과장된 수법이다.
천장은 외진(外陣)쪽으로는 공포의 경사에 따라 빗반자로 처리하고 내진(內陣)은 어칸엔 소란반자를, 협칸은 우물반자로 처리하여 중앙부분을 강조하였으며, 단청은 금단청(錦丹靑)으로 영남지방(嶺南地方)의 전통적인 색조를 띄우고 있으나 내부(內部) 포벽(包壁)의 불화(佛畵) 등의 처리는 조잡하다.
1919년 지석담주지(池石潭住持)에 의해 대중창이 이루어져 현재의 틀을 갖추게 되었으나 근년에 대대적인 중창불사로 과거의 모습은 많이 잃었다.
과거의 가람배치는 사천왕문(四天王門)과 보화루(寶華樓), 대웅전(大雄殿)이 축상에 배치되면서 좌우에 강당인 설선당(設禪堂)과 심검당(尋劍堂), 종무소(宗務所)가 중심영역을 이루고 있었으나 현재는 사천왕문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중층루각이 자리하고 있어 중정의 아늑함과 고태는 상실하였으나 산지중저식배치(山地中底式配置)방법은 지키고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이며 내부는 우물마루를 깔고 내진주(內陣柱)에 의지해 불단(佛壇)을 만들었다. 정면 창호구성을 보면 어칸은 4짝 여닫이문으로 좌우협칸은 3짝 여닫이문을 달았다. 구체부, 즉 주고를 높게 잡은 관계로 문높이가 높아 정첩이나 돌저귀로 지지하기가 어려웠던지 내측에 둔테를 달아 개폐토록하였으며, 개폐방식도 독특하다. 그리고 좌, 우측면 전면칸에 외짝여닫이문을 두고 배면어칸에도 문을 설치하였으나 좌측면 문은 후면칸에 설치되었으나 근년에 전면쪽으로 옮긴 듯하다.
기둥상부는 창, 평방을 설치하고 정면 주간포(柱間包)는 2구(區)씩, 측면 주간포는 1구씩을 얹은 다포작(多包作)으로 꾸몄으며, 공포구성은 외(外)4출(出) ·내(內)6출목(出目)이다.
일반적으로 내출목이 외출목보다 1출목 정도 더 설치되는 것이 상례인데 반해 여기서는 2출목을 더 설치하여 지붕구배를 급하게 잡았다. 이는 사찰이 자리한 부지가 평지인 경우 자주 채택되는 법식으로 건물고를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보여진다.
불단상부는 낙양각이 조각된 보개(寶蓋)를 얹고 용(龍) 과 단조(단鳥) 및 비천상(飛天像)으로 장식하였으며 대량(大樑)위에 걸친 충량(衝樑)머리는 용두(龍頭)를 조각하였는데 조선말기의 과장된 수법이다.
천장은 외진(外陣)쪽으로는 공포의 경사에 따라 빗반자로 처리하고 내진(內陣)은 어칸엔 소란반자를, 협칸은 우물반자로 처리하여 중앙부분을 강조하였으며, 단청은 금단청(錦丹靑)으로 영남지방(嶺南地方)의 전통적인 색조를 띄우고 있으나 내부(內部) 포벽(包壁)의 불화(佛畵) 등의 처리는 조잡하다.
보화루 옆에있는 범종각입니다.
아래층에는 범종이 있고 2층에는 목어와 쇠북이 있습니다.
범종각 2층에 쇠북입니다.
범종각 1층에 범종입니다.
은해사는 현재 말사 39개소, 포교당 5개소, 부속암자 8개소를 관장하고 있는 대본사이다.
1943년까지만 하더라도 은해사에는 건물이 35동 245칸에 이르러 대사찰의 위용을 자랑했지만,
현재 은해사 본사 내에는 19개 건물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좌측에 성보 박물관 앞에 오층석탑이 보입니다.
다음은 은해사 성보 박물관을 돌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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