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27. 08:10ㆍ서울 어디까지 가봤니?/서울 여행지
대한제국의 정궁이었던 덕수궁 (석어당)
대한제국의 정궁이었던 덕수궁은 원래 성종(9대)의 형인 월산대군의 저택이었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서울의 모든 궁궐이 불타 없어지자 1593년(선조 26)부터 선조의 임시 거처로 사용되다가 광해군이 1611년(광해3)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던 이곳에 ‘경운궁’이라는 정식 궁호를 붙여 주었다. 그 후 광해군은 1615년(광해7) 재건한 창덕궁으로 어가를 옮기고 경운궁은 별궁으로 남게 되었다.
경운궁은 1897년 대한제국 출범과 함께 한국 근대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전성기 때의 경운궁은 현재 넓이의 3배에 달하는 큰 궁궐이었다. 현재의 미국대사관저 건너편 서쪽에는 중명전을 비롯해 황실 생활을 위한 전각들이 있었고, 북쪽에는 역대 임금들을 제사 지내는 선원전이 있었으며, 동쪽에는 하늘에 제사 지내는 환구단을 설치하여 황제국의 위세를 과시했다. 그러나 고종황제가 황위에서 물러나면서 경운궁은 선황제가 거처하는 궁으로 그 위상이 달라졌고 이름도 덕수궁으로 바뀌었다. 이후 궐내각사 일부와 환구단이 철거되었고 이 지역은 대한제국의 상징 공간으로서의 위상을 잃게 되었다.
고종이 승하한 뒤 1920년부터 일제가 선원전과 중명전 일대를 매각하여 궁역이 크게 줄어 들었으며, 1933년에는 많은 전각들을 철거하고 공원으로 조성하여 일반에 공개했다. 이처럼 덕수궁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원형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었으나, 임진왜란과 대한제국의 역사적 격변을 겪은 궁궐로 국난 극복의 상징적 공간이자 그 중심이었다.
덕수궁 홈페이지~http://www.deoksugung.go.kr/
석어당 [德壽宮昔御堂]
석어당은 1904년 화재로 불타 그해에 다시 지었다.
선조의 계비인 인목왕후가 10여 년간 감금생활을 했던 곳이다.
광해군은 왕위에 오른후 자신의 왕위를 휘협할 가능성이 있는 형제들을 차례로 제거하고
인목대비를 폐위시켜 경운궁에 유폐했다.이는 반정을 일으키는 구실이 되었다.
반정에 성공한 능양군(인조)은 경운궁으로 인목대비를 찾아가
정통성을 인정받고 여기서 즉위한다유폐의 한이 맺혀있던 인목대비는
서어당 앞마당에 광해군을 꿇어 앉히고 36조의 죄를 물은 후
능양군에게 옥새를 전하였다.
석어당 [德壽宮昔御堂] 내부
'서울 어디까지 가봤니? > 서울 여행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년 제야의 종 타종행사가 열리는 보신각(普信閣) (0) | 2011.05.08 |
---|---|
광화문(光化門) (0) | 2011.04.27 |
남산봉수대 전통문화공연(무예시범 및 민속공연)~2 (0) | 2011.04.25 |
남산봉수대 전통문화공연(무예시범 및 민속공연) (0) | 2011.04.25 |
[봄꽃여행] 회현역에서 남산타워까지 꽃향기 따라 걷는길 (0) | 2011.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