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여행] 대구, 동화사

2011. 5. 8. 23:52전국 절집이야기/사찰(寺刹) 이야기

 

대구, 동화사

 

동화사는 신라말인 934년 영조 靈照선사, 고려 명종 20년(1190) 지눌보조 普照국사, 고려 충렬왕 24년(1298)홍진 弘眞국사에 의해 각각 중창 중건되었다.

보조국사는 호국불교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동화사 중창에 크게 공헌하여 동화사와 염불암에 영정이 모셔져 있다. 또 고려 말기 대표적인 고승인 홍진 국사는 동화사를 하안소 下安所로 삼고 대규모 중창을 이루었다.

현재 해탈교 건너편에 국사를 기리는 부도가 남아있다. 조선 시대에는 선조 39년 (1606) 유정 惟政사명대사, 숙종 3년(1677) 상숭 尙崇대사, 영조 8년(1732) 관허 冠虛, 운구 雲丘, 낙빈 洛濱, 청월 晴月 대사 등이 각각 중창 중건하였다.

대웅전을 비롯하여 천태각, 영산전, 봉서루, 심검당 등 현존하는 당우들은 대부분 조선조 영조 때 중창한 건물들이다. 지난 1992년 통일약사여래석조대불의 낙성을 전후해 동화사의 많은 당우들이 새롭게 지어졌다.

 

 

 

 

 

 

 

 

통일대불

 

 

 

 

 

 

 

 

 

 

 

 

구시(밥을 퍼넣는 그릇으로 사용)

 

 

 

 

금강계단

 

 

 

 

 

 

 

 

 

 

 

 

 

당간지주(보물254호)

제작연대는 신라후기로 추정

 

 

 

 

 

 

 

 

 

 

 

 

 

 

 

 

 

 

 

 

 

 

 

 

 

 

 

 

 

 

 

 

 

 

 

 

 

 

 

 

 

 

 

 

금당선원

동화사의 동쪽에 있는 별당으로진표 율사로부터 영심 대사에게 전해진 팔간자를

심지 대사가 받은 뒤 팔공산에 와서 이를 던져 떨어진 곳에 절을 지으니

 이곳이 바로 동화사 첨당 북쪽 우물이 있는 곳이었다고 한다. 이 우물터가 바로 금당선원 자리이다.
이런 연유 때문인지 금당선원은 한국불교의 선맥을 잇는 수선의 참구도량으로

 개원 이래 운수납자들의 발길이 끊이질 앟았으며, 수많은 도인이

배출된 곳으로 유명하다. 석우, 효봉 대종사를 비롯, 성철 스님 등 해방 이후

불교 정화의 주체가 된 많은 스님들이 이곳에서 결사를 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곳이다.

1974년 5월 증개축 불사로 선원의 면모를 새롭게 정비하였으며,

현재 납자들이 정진 중에 있다. 금당선원은 사찰문화재 보호구역으로

보물 제248호 삼층석탑 2기가 극락전 좌우로 배치되어 있다.

 

 

 

 

 

 

 

 

 

달성 도학동 석조부도

이곳에서 1km정도 떨어진 도학마을 쓰러져 있는것을 이곳으로 옮겨왔다.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기단은 아래받침돌과 가운데받침돌이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윗받침돌은 별개의 돌로 되어 있으며, 큼직한 연꽃무늬를

소박한 솜씨로 둘러 놓았다. 탑신의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의 조각을 두었고,

널찍하게 마련된 지붕돌은 윗면의 느린 곡선이 처마끝까지 펼쳐

지고 있다. 꼭대기에는 아름다운 장식을 한 2단의 머리장식이 올려져 있다.
각 부분의 양식과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