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문화재 탐방] 서울 도심에 천년사찰 봉은사

2012. 1. 2. 06:30전국 문화재와 박물관/국가지정 문화재

 

[서울 문화재 탐방] 서울 도심에 천년사찰 봉은사

 

지금은 고층에 둘러쌓여 그 옛날의 모습은 온전히 남아 있지 않지만 서울의 새로운 중심지에 자리 잡고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채 은은한 법향을 펼치고 있습니다. 1200여 년의 유구한 역사와 조선조에는 조계종을 대표하는 선종 수사찰로서, 근대에 이르러서는 역경사업과 도제를 양성했던 동국역경원이 세워진 터전이며 지금은 새로운 한국 불교 역사의 주인공으로 자리 매김 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1200여년의 전통사찰답게 봉은사의 당우는 대웅전, 지장전, 영산전, 북극보전, 판전, 미륵전, 영각 등의 전, 殿과 각, 閣 그리고 심검당, 선불당, 운하당, 보우당 등의 당, 堂과 다래헌이 있으며 그 외에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부도군과 비석군이 있습니다.

 

 

 

 

 

 

 

 

 

봉은사 목 사천왕 (서울시 유형문화재 160호)

크기 2m 안팎의 이들 사천왕상은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으며

복장물을 통해 조성연대가 1746년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18세기 불교조각 양식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일 뿐 만 아니라

사천왕상 안에서 출토된 다량의 복장유물은 조선시대 복식 연구에 큰 가치를 지닌다. 

 

 

 

 

 

 

 

 

 

 

 

 

왕루

진여문에 들어서면 정면에 큰 전통 한식 건물이 보입니다. 대웅전과 마주하는 곳에 한 칸 아래 누각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법왕루란 말 그대로 해석하면 법의 왕 즉 부처님이 계시는 곳을 말합니다. 요즘 사찰에서는 보통 많은 불자들이 모여 부처님 법석을 마련하는 자리로 설법전이라 이름 하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주로 불전사물의 봉안 장소로 쓰여지기도 하였습니다. 현재 봉은사 법왕루는 대법회가 있을 경우 부족한 기도공간을 대신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1997년 완공되었습니다.

 

 

 

 

 

 

 

 

 

 

 

봉은사 괘불도 (奉恩寺 掛佛圖)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1호

 

1886년 헌종의 후궁인 순화궁 김씨(順和宮 金氏)를 비롯한 여러 상궁들의 시주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원통불사(圓通佛事)를 기념하며 제작되었다. 19세기 서울, 경기지역의 대표적 화승 가운에 한 사람인 대허체훈(大虛 軆訓)이 출초하고 영명천기(影明天機)와 긍조(亘照), 돈조(頓照)가 함께 제작하였다. 면본으로, 4폭의 천을 이어 그림을 그리고 양쪽에 나무 봉으로 마감하였는데, 세로 686cm, 가로 394.5cm의 거대한 화면에 1불 2보살, 2제자만을 그린 간단한 구도를 취하고 있다.

화면의 중앙에는 석가모니불을 큼직하게 배치하고 왼쪽(향우)에 가섭존자, 오른쪽에 아난존자를 그렸으며, 하단부에는 문수보살(동자)과 보현보현(동자)가 각각 사자와 코끼리 위에 올라타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석가모니는 화형(花形)의 두광과 신광을 지니고 정면을 향해 당당하게 서서,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 올려 활짝 핀 백련(白蓮)을 들고 있으며 왼손은 가슴 가운데로 당겨 손가락을 맞대고 있다. 이처럼 꽃을 들고 있는 석가모니의 모습은 석가모니가 연꽃을 들어 보이니 가섭존자 만이 그 뜻을 알고 빙그레 웃었다는, 선종의 교법을 단적으로 표현한 염화시중(拈花示衆)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 작품에 앞서 선석사 괘불(1702년), 용문사 괘불(1705년), 오덕사 괘불(1768년), 남장사 괘불(1788년), 개운사 괘불(1879년) 등에서 볼 수 있는데, 개운사 괘불의 제작에 참여한 大대허 체훈(大虛 體訓)과 만파 돈조(萬波 頓照)가 봉은사 괘불의 조성에도 관여하고 있어 유사한 도상이 적용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후 이러한 도상은 화장사 괘불(1901년)로 이어졌다. 얼굴은 이마부분이 넓고 턱 부분이 둥근 편으로 이목구비가 작게 묘사되었으며, 육계가 높고 뾰족하며 중간계주와 정상계주가 뚜렷하다. 신체는 어깨가 넓고 건장한데, 안에 군의를 입고 왼쪽 어깨에 붉은 대의를 걸친 후 대의 자락을 오른쪽 어깨에 살짝 걸친 변형된 통견식이다. 대의에는 화형의 원문 안에 파도문이 정교하게 그려진 황색의 문양이 그려져 있으며, 청색의 내의에도 잔잔한 꽃문양이 시문되어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석가모니의 광배는 두광은 녹색, 신광은 노란색인데 바깥쪽에는 붉은 화염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석가모니의 좌우에는 가섭존자(향우측)와 아난존자(향좌측)가 본존을 향해 합장하였다. 두 존자 모두 얼굴에 비하여 신체가 너무 비대하여 약간은 불균형해 보이는데, 그로 인해 중앙의 석가모니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가섭존자는 본존과 같은 문양이 시문된 붉은색의 옷을 걸치고 가슴 앞으로 두 손을 모아 본존을 향하고 있다. 노년의 존자를 상징하듯 앞머리가 다 빠진 노인의 모습으로, 길게 늘어진 흰 눈썹과 코밑, 턱밑의 흰 수염, 꾹 다문 입술, 형형하게 살아있는 눈빛, 깊게 패인 이마의 주름, 뼈가 다 드러나는 야윈 목 등이 오랜 세월 수행에 전념한 나한의 참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강한 음영법의 사용으로 인하여 더욱 극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 반면, 건장한 청년모습의 아난존자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본존을 향해 합장하였다. 가섭존자와 대조적으로 표현하려는 의도에서인지 아난존자의 얼굴은 눈과 코, 목 부분에 옅게 바림질을 했을 뿐 음영을 거의 가하지 않았다.

한편, 화면의 하단부는 노란색과 주황색으로 바탕을 칠하고, 본존의 광배와 동일한 모습의 화형 광배 안에 사자와 코끼리를 타고 있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그려져 있다. 두 보살은 두 손으로 비스듬히 백련과 모란꽃을 들고 각각 사자와 코끼리에 올라타 마주보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보관을 쓰고 천의를 입은 보살형이 아닌 쌍계(雙紒)의 동자형(童子形)으로 묘사되었다. 어깨에는 운견(雲肩)을 걸치고 쌍계에는 붉은 리본을 묶은 채 황색 사자와 흰 코끼리 위에 반가좌의 형태로 걸터앉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자와 코를 높이 들고 부르짖는 듯한 코끼리는 19세기 후반 서울, 경기지역의 괘불에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모습으로, 흥천사 괘불(1832)과 안양암 괘불(1882년), 봉원사 괘불(1901년), 흥국사 괘불(1902년) 등에서도 동일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채색은 적색과 황색과 청색, 녹색, 노란색, 흰색, 주황색 등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특히 본존의 신체를 황색으로 칠하는 기법은 서울, 경기지역의 동일한 도상의 괘불에서 공통되는 특징으로서, 지역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또한 구도에 있어서도 화면을 꽉 채워 그리는 19세기 후반 서울, 경기지역의 괘불형식을 답습하고 있다.

화기에 의하면 1886년 5월 26일 원통불사(圓通佛事)를 시작하여 6월 5일에 회향하였다고 하였는데, 원통불사는 관음보살과 관련된 불사라는 점에서 이 괘불은 19세기 활발하게 시행되었던 수월도장공화불사(水月道場空花佛事)와 관련하여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봉은사선불당 (奉恩寺選佛堂)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4호 

 

 

 봉은사 선불당은 당시 스님이 되기 위해 치러야 했던 시험인 승과를 실시하던 곳으로 다른 절에서는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지금은 대중이 참선을 하는 선방으로 사용되며, 독특한 구조를 가진 건물로서 주목받고 있다.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지은 연대가 오래되지 않았고,내부의 천장과 뒷편이 수리되면서 조금 변형이 되었다. 서울 시내에 이 정도 규모의 거창한 선불당은 유례가 없어 19세기의 귀중한 목조 건물로 높이 평가된다.

 

 

 

 

 

 

 

 

 

대웅전

대웅전은 1982년 새롭게 중창되었으며 법당 안에는 2층 닫집을 짓고 중앙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모시고 좌우로는 아미타불과 약사여래 부처님 등 삼존불을 모셨으며 후불탱화는 삼여래회상도를 안치했습니다. 대웅전 어간문 오른쪽으로는 서울시 지방문화재 76호로 지정된 고려시대 장흥사 동종이 있습니다. 불자들의 기도와 정진의 장소이며 조석 예불이 항상 이루어져 불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영산전

영산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主佛)로 모시고 좌우보처인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의 양 옆으로 16 아라한이 옹위하고 있으며 후불탱화와 16나한도, 신중탱화 등의 불화가 있습니다. 영산전은 나한님을 모셨기 때문에 나한님의 영험을 입고자 하는 불자들의 기도 발원이 간절한 곳입니다.

 

 

 

 

 

 

 

 

 

 

 

봉은사 판전 현판 [ 殿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84호

 

 판전은 경판을 보존하기 위한 건물로, 이 안에는 대방광불화엄경() 수소연의() 초판 3,175점이 보존되어 있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84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목판을 봉안하기 위하여 신축한 건물이 판전이고, 여기에 현판으로 걸린 추사 김정희의 글씨가 곧 김정희서판전현판이다.

이 판전 글씨는 낙관부의 '(칠십일과병중작)'이란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추사의 말년작으로 유명하며, 이 글씨를 쓴 3일 후에 추사가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미륵대불

1996년에 완공된 미륵대불은 봉은사의 새로운 성보로써 높이 23m로 국내 최대의 크기의 부처님입니다. 미륵대불 앞에 위치한 미륵전은 법왕루를 새로 증축하면서 옛 법왕루를 그모습 그대로 옮긴 전각입니다. 현재 미륵전과 미륵부처님이 모셔진 광장은 신도들의 기도 장소이지만 큰 행사가 있을 경우에는 공연 등 문화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미륵대불은 1986년 영암큰스님께서 발원하여 봉은사 사부대중이 모두 참여하여 1만명 이상이 불사에 동참하여 10년간에 걸쳐 이루어진 대작불사였습니다.

 

 

 

 

 

 

 

 

 

 

 

 

 

 

 

 

 

종루

1974년에 조성되었으며 아침저녁 예불을 할때

타종을 하며 절생활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곳이다.

 

 

 

 

찾아가는 길

지하철 2호선 삼성역 6번 출구로 나와

아셈타워 쪽으로 100m쯤 걷다 좌측으로 돌면 봉은사 진입로가 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