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탐방/여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37호 영월루 (迎月樓)

2012. 1. 9. 14:00전국 문화재와 박물관/국가지정 문화재

[문화재탐방/여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37호 영월루 (迎月樓)

 

 

여주읍에서 신륵사를 향해 접어들면

길 오른쪽으로 마암(馬巖)이라 불리는 큰 바위가 있다.

이 큰 바위 언덕에 있는 고풍스런 누각으로, 누에 오르면 푸른 강물과

신륵사의 전경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시원스레 탁 트인 전망으로 가슴까지 후련해진다
영월루는 원래 군청의 정문이었는데,

1925년경 신헌수 군수가 지금있는 자리에 누각으로 다시 세웠다고 한다.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의 2층 누각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누각 바로 아래에는 커다란 괴암이 절벽을 이루고 있는데,

바위 위에는 힘있는 필치의 ‘마암’이라는 글씨가 있다.
18세기 말의 것으로 추정하는 이 건물은 전망이 뛰어난 곳에 있을 뿐 아니라,

낮은 기단과 기다란 몸체, 치켜 들려진 지붕의 비례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여주 하리 삼층석탑 (驪州 下里 三層石塔) 보물 제92호

 

원래는 하리지역의 옛 절터에 있던 것을 1958년 창리의 3층석탑과 함께 현재의 터로 옮긴 것으로, 1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얹은 모습이다.
기단은 4면의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기고, 그 윗돌 중앙에 1층 몸돌을 괴기 위한 2단의 테두리 조각을 둘렀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로 이루어져 있으며, 몸돌의 각 면 모서리마다 얕은 기둥 형태의 조각이 나타나 있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4단으로,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양쪽 귀에서 위로 약하게 솟아있다. 전체적으로 돌을 짜서 올리는 수법의 규칙성을 보이고 온화한 비율감이 느껴져 고려 전기보다는 중기에 세워졌을 것으로 보인다.
탑을 옮겨 세울 당시, 1층 몸돌에서 독특한 모습의 사리홈이 발견되어 흥미를 끌고 있다. 즉, 몸돌 윗면의 중앙에 높이 3㎝의 얇은 띠가 둘러져 있고 그 안으로 2개의 구멍이 파여있는데, 이와 닿게 되는 지붕돌의 밑면에도 이를 배려한 듯 홈이 깊게 파여져 있다. 이는 몸돌의 윗면에만 깊은 홈을 두어 사리를 담아두는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라 그 정반대의 형태를 하고 있어 특이하다.

 

 

 

 

 

 

여주 창리 삼층석탑 (驪州 倉里 三層石塔) 보물  제91호

 

원래 창리지역 과수원 안의 옛 절터에 있던 것을 1958년 현재의 터로 옮긴 것이다.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일반적인 형태이나 그 느낌이 독특하다.
아래기단의 4면에는 안상(眼象)이 2개씩 새겨져 있는데, 움푹한 무늬의 바닥선이 꽃모양처럼 솟아올라 있어 당시의 조각기법이 잘 드러나 있다. 기단을 마감하는 맨윗돌에는 엎드린 연꽃 모양의 조각을 둘러 놓았는데, 보기 드문 모습이다. 탑신은 독특한 수법으로 돌을 올려놓고 있다. 즉 1층의 몸돌만 하나의 돌을 사용하였고, 이후 지붕돌부터는 윗층의 몸돌과 하나로 이루어져 있어, 마치 모자 형태의 돌 3개를 얹어놓은 듯하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3단이며, 추녀는 매우 두껍고 귀퉁이 끝의 들림도 희미하다.
각 부분의 재료가 두툼하여 전체적으로 높아 보이며, 아래기단의 안상이나 3단의 지붕돌 밑면받침 등에서 고려시대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조각수법도 엉성하고 몸돌과 지붕돌을 각 하나의 돌로 쌓는 등 간략한 모습들도 여기저기 보이고 있어 고려 중기 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여겨진다.

 

 

 

 

 

 

 

 

 

 

 

 

 

주소~경기 여주군 여주읍 상리 136-6

문의~경기도 여주군 문화재사업소 031-887-35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