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주박물관 (야외정원)

2012. 3. 6. 17:00전국 문화재와 박물관/국내 박물관

 

 

 

백제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주박물관 (야외정원)

 

국립공주박물관은 1971년 공주시 송산리 고분군에서 발굴 조사된 무령왕릉과 대전•충남지역에서 출토된 국보 18점, 보물 4점을 포함한 30,000여 점의 문화재를 수집•보관하고 있으며, 학술적 가치가 높은 중요유물은 상설전시와 특별전시를 통해 관람객이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시는  무령왕릉실, 충청남도의 고대문화실, 야외정원의 3곳의 상설전시공간과 1곳의 특별전시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04년 5월 신축 개관하여 보다 나은 전시환경에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1층 무령왕릉실은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으며, 2층 충청남도의 고대문화실은 원삼국시대부터 사비(부여)로 천도하기 이전까지 웅진(공주)을 중심으로 한 백제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고, 야외정원에서는 공주 일원에서 출토된 많은 석조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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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정원 전시

공주시 반죽동의 대통사지(大通寺地)에 있던 대통사지(大通寺地) 석조(石槽)와

서혈사지 출토 석불좌상 등 70여점의 석조미술품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공주 서혈사지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의 석조여래좌상

충청남도기념물 제37호로 지정된 공주 서혈사지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의 석조여래좌상으로서 불두()와 중대석이 결실된 상태이다. 불상의 현존 높이는 59㎝, 어깨 너비는 51㎝, 무릎 너비는 76㎝이다. 불신()은 전체적으로 사각형을 이루고 있는데, 입체감이 떨어져 빈약한 가슴과 가느다란 팔이 두드러져 보인다. 법의()는 왼쪽 어깨에 옷을 걸치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편단우견() 형식이며, 옷주름은 느슨한 선각()으로 표현하였다. 양손이 신체에 비하여 지나치게 커서 비례가 어색하고, 촉지인()을 취하고 있는 오른손은 각이 진데다가 평면적이어서 사실감이 떨어진다. 

 

 

 

 

 

 

 

 

 

 

 

 

공주 반죽동 석조 (公州 班竹洞 石槽) 보물  제149호

 

공주 중동 석조(보물 제148호)와 같이 대통사터에 있었던 백제의 유물로, 절에서 주로 연꽃을 담아 장식하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1940년에 국립공주박물관으로 옮겨와 보존하고 있다.

공주 중동 석조와는 규모만 다를 뿐 양식이나 조각수법이 거의 같아서, 두 석조는 어느 한 건물 앞에 한 쌍으로 두려고 동시에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석조는 굽이 높은 사발을 확대한 모양으로 네모난 바닥돌 이외에는 거의 동그란 구조이다. 바닥돌 위에 원기둥으로 된 받침기둥을 세우고, 그 위로 둥글고 큰 석조를 얹었는데, 석조는 화강암의 안을 파내어 만든 것이다.

받침 기둥에는 전형적인 백제 수법으로 12개의 잎을 가진 연꽃무늬를 도드라지게 새겨 두었는데, 이 무늬는 공주지방에서 나온 기와무늬와도 같은 모양이다. 그 위로 놓여있는 석조는 입구 가장자리에 굽처럼 넓적한 띠를 돌리고, 중앙에는 2줄의 띠를 돌렸으며 띠에는 8개의 연꽃잎을 가진 꽃송이를 사방에 도드라지게 새겨 장식하였다.

통일신라시대의 직사각형 석조와는 달리 연꽃잎을 장식한 받침기둥 위에 놓인 이 석조는 바깥 면에도 풍만한 연잎과 단아한 띠를 돌려 귀족적인 느낌을 준다. 현재 비바람에 의하여 장식무늬가 많이 닳아 있다.


이 석조는 원래 대통사지(大通寺址)의 금당지(金堂址)와 강당지(講堂址) 사이에 있었던 백제의 유물이다.

석조대좌(石造臺座) 위에 원주형(圓柱形)으로 된 받침기둥을 세웠고, 그 위에 놓여진 둥글고 큰 이 석조는 한 개의 화강암(花崗岩) 내부를 파내어 만든 것이다. 받침기둥에는 전형적인 백제 수법으로 12개의 잎을 가진 연꽃무늬를 도드라지게 새겼다. 구연부에는 모두 한 줄의 띠를, 가운데 두 줄의 띠를 돌렸으며 8개의 연꽃잎을 가진 연꽃무늬를 사방에 4개를 도드라지게 새겼다. 이 연꽃무늬는 공주지방에서 나온 기와무늬와도 같은 모양이다.

반죽동 석조는 너비 155cm, 길이 56cm, 두께 16.5cm의 크기이다. 대통사는 『삼국유사(三國遺事)』 기록에 의하면 백제(百濟) 성왕(聖王) 7년(529)에 창건됐으므로 이 석조는 확실한 연대를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백제 유물이라 겠다.

 

 

 

 

 

공주 중동 석조 (公州 中洞 石槽) 보물  제148호

 

국립공주박물관 정원에 있는 백제시대 석조로, 사찰에서 연꽃을 담아 장식했던 것이다.

원래는 공주시 반죽동의 대통사 터에 공주 반죽동 석조(보물 제149호)와 함께 있었으나, 일제시대에 일본군이 말구유로 쓰기 위해 옮겨가 제자리를 떠나게 되었다. 1940년 이 곳으로 옮겨올 당시 중동초등학교에서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때부터 ‘중동석조’라 부르게 되었다.

규모에 있어서 반죽동 석조보다 약간 작을 뿐 양식이나 조각 수법이 동일하여, 어느 한 건물 앞에 한 쌍으로 두기 위하여 동시에 만들어졌던 것으로 믿어진다.

석조를 받치고 있는 받침 기둥은 일본군에 의해 깨어져 없어지고, 이후 반죽동 석조의 것을 모방하여 만들었는데, 원기둥에 연꽃을 둘러 새긴 모습이다. 석조는 굽이 높은 사발 모양으로 입구 가장자리에 굵은 돌기를 돌렸다. 바깥 면에는 2줄의 작은 띠를 돌려 새기고, 띠 위에 일정하게 연꽃을 장식하였는데 반죽동 석조에 비하여 많이 닳지 않아 문양이 훨씬 뚜렷하다.

대통사는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 성왕 7년(529)에 창건된 사찰이므로, 이 석조는 그 제작년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백제 유물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석조의 형태나 연꽃무늬는 백제의 불교미술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므로 그 가치는 반죽동석조와 아울러 높이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