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왕비의 공간인 강령전과 교태전

2012. 3. 13. 10:34전국 문화재와 박물관/국가지정 문화재

 

 

왕과 왕비의 공간인 강령전과 교태전

 

강녕전
왕의 침전에 해당하며 월대에서는 의례가 거행되기도 하였다. 사정전을 뒤돌아 가면 행각에 연이어 있는 향오문이 나오는데 이곳이 궁궐의 침전영역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경복궁에는 왕과 왕비의 침전영역이 둘로 구분되어 있다. 하나는 왕의 침전인 강녕전(康寧殿)이고, 다른 하나는 강녕전의 후면에 있는 양의문을 통하여 들어가는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交泰殿)이다. 궁궐에서 침전은 왕과 왕비가 일상생활을 하는 곳이며, 내외 종친을 불러 연회(내진연)를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정사와 관련한 일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왕이 신하들을 불러 은밀히 정사를 논의하는 곳 또한 침전이다.

 

 

 

 

 

 

 

흔히 이 공간을 침전영역으로 부르지만, 엄밀히 말하면 왕의 침소라는 축소된 의미보다는 '왕의 일상적인 생활 및 업무공간'이라고 해야 정확하다.
왕이 강녕전을 침소로 쓰기도 했지만, 대신들과 만나 일상업무를 보는 집무공간으로도 활용하거나 연회를 베풀기도 했기 때문이다. 특히 왕실 가족들과 연회를 즐길 때는 강녕전 월대를 중심으로 임시 가설무대를 넓게 설치하여 이곳에서 궁중가무 등을 관람하기도 했다.

강녕전은 1359년(태조4) 경복궁을 처음 지을 때 건립되었다. 그해 10월 정도전이 궁궐에 경복궁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아울러 각 정각에도 이름을 지어 그 뜻을 태조에게 말하였는데
'일상적으로 거처하는 가운데 늘 덕을 쌓고 황극을 세우면 오복을 누리게 되는데, 오복의 가운데가 바로 강녕이고 이는 오복을 모두 차지하기를 기원'하는 뜻이라고 한다.

강녕전의 외형적인 특징 중 하나는 강녕전의 지붕이 '용마루가 없는' 무량각 지붕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경복궁의 교태전, 창덕궁의 대조전, 창경궁의 통명전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용마루가 없는 전각들은 대부분 왕 또는 왕비의 침전으로 쓰였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강녕전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손에 서울이 폐허가 될 때 불타 없어졌다. 그 후 270년이 지난 고종 초년에 경북궁을 중건할 때 당연히 함께 중건되었다. 그러나 다시 세워진 강녕전은 50년을 넘기지 못하고 또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1917년 창덕궁 내전에 큰 불이 났는데 이름 복구할 때 경복궁에 남아있던 건물들을 옮겨다 놓으면서 강년전은 창덕궁의 연침인 희정당이 되어있고, 경복궁에는 1995년에 새로 복원된 강녕전이 들어서 있다.

 

 

 

 

 

 

 

 

 

 

 

 

 

 

 

 

 

 

 

 

교태전~왕비의 침전

세종 때에 임금이 오래 머물 곳이라 하여 규모를 크게 하여 고친 후 온돌을 수리하는 도중 화재가 발생하는 등 세 차례의 화재를 당하였다. 역시 경복궁 중건공사 때 다시 세워졌으나 1918년 창덕궁의 침전이 소실되자 그 목재를 조달한다는 목적으로 헐렸으며 1920년 창덕궁의 희정당을 짓는데 사용되었다. 지금의 강녕전은 1995년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강녕전의 공간구성은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두고 전면에 넓은 월대를 꾸민 것이 특징이다. 이 월대는 의례를 행하는 공간으로 내진연, 외진연 등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잔치 때에는 주변에 보계(補階)를 설치하여 보조하기도 하였다.

 

 

 

 

교태전은 세종 22년(1440) 무렵 처음 건립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고종의 경복궁 재건 당시에 중건되었습니다. 하지만 1917년의 화재로 소진된 창덕궁 내전 전각을 중건한다는 구실로 헐려 창덕궁 대조전의 부재로 쓰였습니다. 지금의 교태전은 1994년에 복원한 것입니다.

교태전은 왕비의 침실이 있는 중궁전의 건물이다. 교태전의 동쪽에는 원길헌이, 서쪽으로는 함홍각이 이어지고 동북쪽으로는 'ㄱ'자 모양으로 구성된 건순각이 잇닿아 있다. 이 건순각은 중궁전의 후원인 아미산과 교태전을 이어 주며 교태전 후원을 아늑하게 감싸는 역할을 하고 있다. 원길헌과 함홍각 그리고 행랑은 방과 큰 마루, 부엌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태전은 궁궐 안에 있는 건물 가운데 가장 화려하게 치장되었던 것으로 짐작되며 강녕전과 더불어 이 건물에도 용마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교태전후원~아미산

아미산에는 다양한 화초를 심어 화계를 꾸미고 교태전 온돌에서 나오는 연기가 빠져 나갈 수 있는 굴뚝을 세웠다. 또한 호수나 연못을 상징하는 모양의 석함(石函)을 두어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풍경을 조성하였다.

아미산 굴뚝은 교태전을 중건할 때 같이 만든 것으로 6각형의 면에 덩굴무늬, 학, 박쥐, 봉황, 소나무, 매화, 국화, 불로초, 바위, 새, 사슴 따위의 무늬를 조화롭게 배치하였다. 각 무늬는 벽돌을 짜 맞추어 배열하고 그 사이에는 회를 발라 면을 구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