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 "정동 1900" [주말 가볼만한곳]

2012. 12. 7. 05:57우리 문화예술 공연전시 /공연,전시회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 "정동 1900" [주말 가볼만한곳]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에 위치한 서울역사박물관입니다.

옛 서울과 서울사람들의 생활, 문화 등의 주제가 되어 전시된 곳으로

늘 무료 상설전시로 서울역사에 관한 모든것을 볼수 있습니다

오늘은 기획전시인 "정동 1900"이  2012. 11. 9(금) ~ 2013. 1. 20(일)까지

열리고 있는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만 사진을 담아 보았습니다

대한제국의 중심공간이면서, 외국인들의 공간이었던

1900년을 전후로 한 정동을 돌아보면서, 서양인들과 한국인들이

 서로를 인식하고 교류하고 공존해 나가는 과정을 전시하며

이를 통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서양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11월 9일부터 서울 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는

 정동에 대한 추억을 더듬는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서울 역사박물관의 개관 10주년 기념으로 기획된 이 전시는 개항 이후 서양인들이 둥지를 틀고

 낯선 공존의 무대를 열기 시작했던 정동에 대한 추억을 더듬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지금은 서울 어느 곳에서나 파란 눈 뿐 아니라 노란 눈의 외국인을 만나는 것이 신기하지 않습니다만

100여 년 전만 해도 대한제국과 서양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낯설기만 한 이방인들이었습니다. 

 ‘KOREA’라는 이름도 이제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낯선 국가의 이름이 아니지만

1900년 당시 외국인들의 생각하기에 미지의 국가였던 대한제국은 세계를 향한

발걸음을 처음으로 내딛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낯선’존재에서 ‘익숙한’ 존재로

바뀌기 까지는 호기심과 충돌, 교류와 변화가 동반되어야만 했는데,

 그 모습은 정동이란 지역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883년 조선보빙사를 미국에 파견하여 보스턴 만국박람회에

비공식적으로 몇몇 공예품을 출품하여 처음으로 참여하였고

 공식적인 참가는 1893년 미국 시카고 박람회에 였다.

이때에 주 전시장인 제조와 교양관에 일부 공간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대한제국 선포 3년뒤인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참여하게 되엇다.
대한 제국의 1900년 만국박람회 참가는 프랑스 정부의 초청으로 시작된다.

처음에는 글레옹 남작의 주도로 전체 도면을 작성하는 등 제반 사항들이 진행되었으나,

그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그러나 대한제국의 적극적인

 참여 의지로 다시 오귀스트 미므렐 백작을 후원자로 임명하고

민영찬을 프랑스로 보내어 한국관 공사를 마무리 할수 있었다

 

 

 

 

 

 

 

 

 

 

 

참가국 국가원수 채색판화

 

 

고몽 스테레오 카메라

 

 

 

 

 

 

 

 

 

 

 

 

 

만국박람회는 1851년 런던의 수정궁에서열린 '만국 산업물산 대박람회'를 시작으로

 산업과 문화 그리고 정치적 국제 무대가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은

 가히 박람회 시대라  부를 만큼 근대의 다른 이름이 되었다 더불어 당시의 박람회는 대부분의 서양인들이

아시아 전신과에서 동양을 처음 만나는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기념하기위한

1900년 만국박람회에는 56개국 초청국중 40개국이 참가하였으며 약5천만 명의 관람객이 몰렸다.

또한 주 전시회장 규모가 약 33만평에 이르는 박람회 시대의 절정기를 보여주는 행사였다고 평가되었다.

 

 

 

만인산

 

 

 

 

 

 

 

 

 

 

 

 

 

 

 

 

 

 

 

 

 

 

 

 

 

 

 

 

 

 

 

 

 

 


 

 

 


 


 

 

 

러시아공사관모형

 

 
 

프랑스공사관모형

 

 

 

정동, 낯선 공존
1883년 미국공사관이 정동에 들어 서면서 이곳은 서양인들 터전으로 자리 잡았고

1895년 을미사변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아관파천을 단행하여 경운궁으로 이어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크게 주목빋지 못했던 정동이 대한제국이 들어서면서 제국의 중심공간이자

외국인들의 공간으로 등장한 것이다 서로가 낯선 이방인들이 한곳에 모여 살면서 충돌하고

 호기심도 느끼면서 반응하고 교류하였다.이들은 낯선 공존을 이루면서 독특한 정동의

공간을 만들어 냈다. 정동은 국제교류와 외교의 무대였으며 신문들의 발신지였고

아울러 선교와 교육, 의료의 기지로서 근대사의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1902년 게일이 그린 서울지도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2가 2-1

02-724-0274

www.museum.seoul.kr

5호선 광화문역 8번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