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9. 8. 15:08ㆍ서울 어디까지 가봤니?/서울둘레길 한양도성 순성길
한양도성길 [서울성곽길 4구간] 숭례문구간 2,2km 숭례문에서 경희궁
숭례문에서 경희궁지까지의 구간으로 한양도성의 정문이였던 숭례문은
한강과 도성의 최단거리에 있어 사람과 물자의 통행이 제일 많았던 곳으로
조선후기 성밖에는 칠패시장이 문안에는 남대문 조시가 만들어 졌고 이중에
칠패시장은 종루, 이현시장과 함께 도성 삼대시장이였고 남대문 조시는 현재의
남대문 시장으로 이어졌다 서구각국과 통상조약을 체결, 서울을 개방한후
정동을 중심으로 각국 공사관과 사택,선교사들이 들어와 교회와 학교들을
세운다 1899년 전차의 개통으로 숭례문은 더 이상 문의 구실을 못하게 된다
1907년 교통불편 해소를 이유로 양쪽 성벽이 철거 되기에 이른다 이후에도
대형건물이 들어 설때마다 성벽이 철거되어 지금 이구간에서는 옛 성벽을
찾아 보기가 어렵다 대한서울상공회의소에서 올리브 타워로 가는 길에
담장처럼 일부가 남았고 창덕여자중학교 담장 하단에 50m가 남아있다
안타깝게 아직도 낮설은 국보 제1호 숭례문
어이없는 방화로 5년 3개월간의 복원공사로 우리곁으로 돌아온
국보 제1호 숭례문은 이제 정이 들만도 하지만 쉽지가 않네요
많은 시간 그리고 복구비용이 들여 복구했다 그러나 숭례문 방화
못지않게 충격적인 일은 부실공사와 비리 논란이 일었던 이 모습이
우리 문화재를 관리하는 현주소는 아니겠지요 당연히 복구에 써야될
국가자산 금강송을 빼내고 국민이 정성껏 기증한 나무들도 엉뚱한데
사용하였으며 문화재청의 일부 공무원들은 뇌물까지 받은 이러한 복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건지요 다시는 이런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서소문 터
서소문 순교성지
서소문이 순교를 위한 통로로 이용된 것은 신유 대박해시
초기 교회의 평신도 지도자들이 순교의 피를 흘려 시작 되었다
서소문 밖 네거리 성지는 평신도들의 학문 연구를 통한 신앙과 노력으로
교회를 세워 신앙을 실천했던 평신도들의 예지와 용맹과 결단의 순교지이다
서울시립미술관
정동교회[사적 제256호]
고종 광무 2년에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교회건물로 벽돌건물로 아치형의
창문을 내고고딕양식의 단순화된 소박한
분위기의 북미계통의 교회건물이다
정동로터리
조선시대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이 있던것에 연유하여 정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덕수궁과 구한말의 격변하는 역사의 현장이였던 곳으로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인 배재학당, 이화학당과
한말의 정치인과 구미 외교관들의 사교장이였던
손탁호텔과 러시아공관 등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정동극장
정동극장은 전통문화의 보존과
계승발전 및 공연예술 진흥사업에 기여 하고자
문화체육관광부 재단법인인 복합 공연장으로
1995년에 국립중앙극장의 분관으로 설립되었다
이후에 재단법인으로 독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을사늑약 체결의 비운의 현장이며
고종이 헤이그 특사를 파견했던 중명전
중명전은 황실 도서관으로 1904년 경운궁 화재 이후에
고종이 이곳에 거처를 옮겨 편전으로 사용하면서 중명전으로
이름도 바꾸었다 1905년에 중명전에서 을사늑약이 체결된
비운의 현장이며 고종이 헤이그 특사를 파견한 곳이기도 하다
살트르 성바오로 첫 수녀원 자리
살트르 성바오로 수녀들은 한국진출하여
러시아 공사관과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첫 수녀원 자리로
현재 정동공원 자리에 소박한 기념비 하나가 세워졌다
구러시아공사관 [사적 제253호]
고종 27년에 지은 르네상스풍인 벽돌 건물로
한국전쟁대에 건물이 심하게 파괴되어 일부만 남아있다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에 고종이 세자와 피신하여 있던 곳이다
보호수인 카나다대사관 앞의 수령 520년의 회화나무
정동 작은형제회 수도원
작은형제회는 로마 가톨릭 수도회로
대한민국에는 1938년 대전수도원 설립으로
역사가 시작되으며 현재 작은 형제회 한국관구는
서울시 중구 정동 작은형제회 수도원 이다
돈의문 터
돈의문은 서울 성곽의 4대문의 하나로
서대문과 새문, 신문이라고도 부른다
1915년 일제때 전차복선화로 강제로 철거되었고
지금는 정동사거리에 표지석으로만 남아있다
경교장[사적 제465호]
경향신문사 길 건너편에 강북삼성병원내에 위치하고 있다
백범 김구선생이 사저와 집무실로 사용했던경교장의 집무실은
안두희의 총탄에 백범 김구선생이 서거한 곳이기도 하다
광해군이 세운 조선후기 이궁 경희궁지[사적 제271호]
경희궁은 인조의 생부인 원종의 사저가 있던 곳이였으나
이집터가 왕기가 서린다는 풍수설에 광해군이 이곳에 궁궐을 짓기
시작하여경덕궁이라 부른다 하지만 광해군은 인조반정으로 궁을
완성하진 못하고 1623년에 폐위된다 그후 인조는 인목대비를 받들어
일시 머물렀고 이후에도 역대왕들이 이 궁에 거처하게 되며 왕궁의
면모를 갖춘다 약 7만여평의 상당히 큰규모이었지만 민족항일기인
1907년~1910년 사이에 강제로 철거당해 궁궐로서의 존재가치가
상실되었고 궁터 또한파괴,변형되었다 1988년에 경희궁 복원작업을
시작하여 흥화문은 신라호텔에서 다시 옮겨왔고 숭정전은 새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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