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갈 테면 가라지요 - 신현림

2005. 3. 31. 07:52사진과 함께 좋은글과 시/좋은글과 시

 

 

 

세월, 갈 테면 가라지요 - 신현림

 

 

 멸종된 인간은 그리움이지만
  멸종된 시간은 두통이다
 
  사라진 어제를 향해
  "그래, 네 맘대로 가라"
  문을 열었다 닫는 순간
  팔십년대의 그림자가 피걸레처럼 뒹굴고
  투사의 외로운 운동화가 쓰러진 곳에
  우르르 삐삐와 쇼핑백을 든 이들이 몰려갔다
  가는 곳마다 종말의 쇠사슬인 차가 밀렸다
  사람들은 제멋대로 흩어졌다
  어떤 친구는 따분하다며 무덤으로 갔고
  나의 할아버지는
  밥 한끼 먹었을 뿐인데 백년이 지났단다
  기계의 나사가 빠지면 재빨리 갈아끼우듯
  세대교체는 간편했다
  세월은 구름처럼 단조롭고 졸립지요
  영화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을 보니
  노을만큼 눈이 화악 떠집디다
  비디오는 이 시대의 마약입니까?
  저승 가는 길에도 비디오방에 들르시오
  잠옷처럼 편한 바람이 불면
  그날만큼은 TV를 끄고 시를 읽어주세요
 
  제 청춘의 바통을 받으시고
  흐지부지 끝나는 인연만큼이나 슬프지만
  세월, 갈 테면 가라지요
  그만 커튼을 내리시고 전기불은 꺼주세요
  불빛이 꺼지면 나나 당신들
  아예 지구에서 사라지면 어떡하죠
  빨간 잉어가 왕겨 같은 눈물을 흘립니다
  세월, 갈 테면 어서 가시지요

 

 

 

 


 

 


 

 


 

 

 

 

 

 

 

 

 


 

 


 

첫번째 사진과 마지막 백두산 천지가 보이는 사진은

전시된 사진을 재찰영 한 것임

 

 

'사진과 함께 좋은글과 시 > 좋은글과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꿈 나그네   (0) 2005.04.11
산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   (0) 2005.04.01
물이 되는 꿈 - 루시드폴   (0) 2005.03.30
썰 물  (0) 2005.03.27
어미 닭과 병아리 다산 정약용  (0) 2005.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