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채봉의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

2005. 10. 24. 00:05사진과 함께 좋은글과 시/좋은글과 시

 

 

 

 

세탁소에 갓 들어온 새 옷걸이한테
헌 옷걸이가 한마디하였다.
“너는 옷걸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길 바란다.”
“왜 옷걸이라는 것을 그렇게 강조하시는지요?”
“잠깐씩 입혀지는 옷이 자기의 신분인 양 교만해지는
옷걸이들을 그동안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 정채봉의《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중에서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 천상병의《귀천(歸天)》중에서 -

 

 

매화나무나 벚나무는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목련도 개나리도 진달래도 꽃이 먼저 핀다.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부터 보여준다.

참으로 순수한 열정이다. 나뭇가지의 어디에
그런 꽃이 숨어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겨울에 그들은 한낱 불품없는 나뭇가지에 불과하다.
색깔도 거무튀튀하다. 먼지가 쌓여있고, 가끔 새똥도 묻어 있고,
어떤 것은 검은 비닐 봉지를 뒤집어 쓰고 있다.
어딜 보아도 아무데도 쓰일 데가 없는 무가치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놀랍게도 꽃을 피워내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나를 아름답게 한다.


- 정호승의《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중에서 -

 

'사진과 함께 좋은글과 시 > 좋은글과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람이 나뭇잎을 다 만나고 올 때까지   (0) 2005.10.27
가을 햇볕에 / 김남조   (0) 2005.10.26
남이섬  (0) 2005.10.23
떠도는 자  (0) 2005.10.21
하늘, 하늘, 하늘 / 이해인  (0) 2005.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