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자 풀잎은 노오랗게 시들었다.
2005. 11. 22. 00:13ㆍ사진과 함께 좋은글과 시/좋은글과 시
풀잎은 왜 나는 지천에 널려 있는 평범한 존재냐고
투정하지 않았다.
풀잎은 왜 나한테는 꽃을 얹어 주지 않았느냐고
불평하지 않았다.
해가뜨면 사라져 버리기는 하였지만
이슬방울 목걸이에 감사하였다.
때로는 길 잃은 어린 풀무치의 여인숙이 되어 주는 것에
만족하였다.
가을이 오자 풀잎은 노오랗게 시들었다.
그리고 실낱 같은 미미한 바람에도
이리저리 날리는 신세가 되었다.
검불이 된 풀잎은 기도하였다.
"비록 힘 한낱 없는 저입니다만
아직 쓰일 데가 있으면 쓰여지게 하소서."
어느날, 산새가 날아와서 검불을 물어 갔다.
산새는 물어 간 검불을 둥지를 짓는 데 썼다.
그리고 거기에 알을 낳았다.
산바람이 흐르면서 검불의 향기를 실어 갔다.
무지개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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