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온 소포 - 고두현
2007. 11. 10. 11:46ㆍ사진과 함께 좋은글과 시/좋은글과 시
늦게 온 소포 - 고두현
찌든 생활의 겉꺼플들도 하나씩 벗겨지고
오래된 장갑 버선 한 짝
해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
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 듯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
'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 몃 개 따서
너어 보내니 춥을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
봄 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 어렵더라도 참고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리라 '
헤쳐 놓았던 몇 겹의 종이
다시 접었다 펼쳤다 밤새
남향의 문 닫지 못하고
무연히 콧등 시큰거려 내다본 밖으로
새벽 눈발이 하얗게 손 흔들며
글썽글썽 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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