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2009. 10. 8. 22:09카톨릭 이야기/영성의 샘물

 

 

 

 

 

 

 브렘다는 암벽 등반을 배우기를 원하던 젊은 여성이었다. 비록 그녀는 무서워 죽을 지경이었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서 이 거대한 암벽을 마주 보았다. 사실상 거의 수직이나 다름 없었다. 

그녀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기아를 넣고 로오프를 단단히 잡고 암벽면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숨 돌릴 수 있는 바위턱에 도착하였다. 그녀가 그곳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 누군가 절벽 꼭대기에서 로오프를 잡고 있는 사람이 실수를 하여 로오프가 브렌다의 눈을 후려쳐 콘택츠 렌즈를 떨어뜨렸다.

콘텍츠렌즈가 얼마나 작고 투명한지 그것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 것이다. 바위 턱에 앉아 있는 그녀로부터 몇 백 피트 아래에 그리고 몇 백 피트 위에 있는지를 누가 알겠는가.

물론 그녀는 콘택츠 렌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바라면서 보고 또 보았다. 집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고 시야는 침침한 상태로 있으니, 그녀는 가까운 곳에는 새로운 콘택츠 렌즈를 구할 수 있는 장소가 없다는 사실에 매우 마음이 상했다.

그녀는 하느님께 그녀가 렌즈를 발견하게 도와 달라고 기도 하였다.

그녀의 마지막 희망은 아마도 그녀가 절벽 정상에 도달 했을 때 정상에 도달해 있는 여자들 중에 한 명이 브렌다의 눈의 구석에 있는 콘택츠 렌즈를 찾아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녀가 정상에 도달했을 때 한 친구가 눈을 검사했으나 콘택츠 렌즈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앉아 나머지 사람들이 암벽 면ㅇ르 타고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성서 구절에 대해 생각하면서 먼 삳들을 구비구비 바라보고 있었다. "주님, 당신은 이 산백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당신은 저 산들 위에 있는 모든 돌맹이와 잎사귀를 아십니다. 그리고 저의 콘택츠 렌즈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를 아십니다."

드디어 내려갈 시간이 되었다. 그들은 산길을 걸어 맨 아래로 내려갔다. 그들이 그 곳에 막 도착하자 거기에는 새로운 암벽등반 그룹이 오고 있었다. 그들 중의 하나가 암벽면을 올라오며서 소리쳤다.

'어이, 누구 콘택츠 렌즈 잃어버린 사람 없어요?"
자 이거 충분히 놀랄만한 일이지요? 그녀는 콘택츠 렌즐를 찾았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녀가 왜 그것을 보게 되었는지 아는가?

다른 이가 암벽을 오르다 잠시 쉴 때 그 사람의 눈에 한 마리 개미가 그 콘택츠 렌즐를 끌고 암벽을 천천히 가로 질러 가는 것을 본 것이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우주의 하느님에 새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 분은 가장 작은 것도 주관하시는가? 개미조차도 그분께는 중요한가? 물론 그렇다. 그분이 그것들을 만드셨다. 그분은 그것들을 설계하셨다.


브렌다가 만화가인 자기 아버지에게 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였을 때 아버지는 “주님, 저는 왜 당신이 제게 이 물건을 운반하게 하시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것을 먹을 수도 없고 도 이것은 엄청 무겁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제가 이 일을 하는 것을 원하신다면 저는 당신을 위해 이것을 운반할 것입니다.” 라는 글과 함께 콘택트렌즈를  끌고 가는 개미를 그렸다.


나는 때때로 우리가 “하느님, 당신은 왜 제가 이 짐을 지고 가기를 원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되고 이것은 엄청 무겁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제가 그것을 운반하기를 원하신다면 저는 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마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느님은 능력이 있는 사람을 부르시지 않고 불림을 받은 사람에게 능력을 부여하신다.


예, 나는 하느님을 사랑합니다. 그분은 저의 존재의 근원이시고 구세주이십니다. 그분은 제가 매일매일 활동하게 하십니다. 그분 없이는 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분과 함께하면 저는 저에게 힘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들어 주시고 내 기도소리에 귀를 기울이셨다.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당신의 사랑을 거두지 않으셨으니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시편 66, 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