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여행] 수원화성박물관

2012. 1. 6. 20:10전국 문화재와 박물관/국내 박물관

 

[수원여행] 수원화성박물관

 

수원화성박물관

세계문화유산 화성의 역사와 문화를 총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전문박물관이다.

수원신도시 건설과 화성을 축성한 정조(正祖)의 사상과 정신을 포함 하여

화성 축성에 참여한 인물, 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영(壯勇營) 군사,

그리고 정조의 8일간의 화성행차를 통해 각종 문화행사를모형과 유물을 통하여 전시하고 있다.

또한 야외 전시장에는 거중기와 녹로를 비롯한 화성축성에 사용된 과학 기자재이다.

높이 11m에 이르는 녹로는 화성 축성 당시 높은 성벽을 어떻게 쌓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2008년 12월 준공된 수원화성박물관은 2009년 5월 1종박물관(전문)으로 등록하였다.

 초대 화성유수이자 화성성역 총리대신이었던 문숙공 번암 채제공 선생님의 초상화(보물 1477호)를

비롯하여 정조대왕께서 하사하신 비밀어찰을 비롯한 많은 유물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이는 채제공 선생님의 6대 후손이신 채호석 선생님의 기증으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중앙전시홀에는 화성모형도와 영상으로 제작된 화성연표가 있어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

 

 

 

 

 

문화실은

 1795년 정조의 행차와 군사 개혁의 핵심인 장용영,

그리고 초대 화성유수이자 화성성역 총리대신인 채제공 기증유물을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를 사도세자가 잠들어 있는

 화성에서 거행함으로써 드러냈던 부모에 대한 효, 왕조의 권위회복,

그리고 애민정신을 패널과 모형을 통해 전시됩니다.
왕권강화를 위해 창설된 장용영 군사들의 무기와 무예,

서북공심돈에서의 가상전투 장면을 통해

수도 남쪽을 방어하는 화성의 위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정조의 어진입니다. 드라마 바람의화원에서 정조의 어진을 다루었던

김홍도가 그렸다는 어진은 소실되어 남아있지 않고 근세에 제작한 어진입니다.

정조대왕은 조선시대 개혁정치를 꿈꾸며 수원으로 천도를 계획 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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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어진입니다.

 정조는 행궁 재위기간동안 3번 어진을 그렸지만 모두 소실되고

이 어진은 1992년 이길범화백이 새로 그린 어진입니다.

아래는 황룡기입니다. 국왕의 행렬에 사용한 깃발입니다.

 

 

 

 

 

 

 

 

 

 

조선의 개혁정승이였던 번암 채제공의 초상화,편지.호패.교지등을 전시해 놓았습니다.

 

 

 

 

채제공초상 시복본

1791년 채제공 73세 때에 그린 초상화로,

화사 이명기가 41세의 정조 어진을 그린 후 정조의 명을 받아 그렸다.
초상화는 번암이 오사모에 분홍빛 단령을 입고 화문석 위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좌측 눈의 사시 기운까지 표현되고 있는 점에서 매우 사실적임을 알 수 있다.
좌측에는 ‘임금이 하사한 부채와 선추는 물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감싸고 있는

 모든 것이 군주의 은혜’라고 감격하는 번암 자필의 찬문이 적혀 있다.
조선시대의 초상화 중 독특하게 손이 표현되어 있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정조의 하사품인 부채를 드러내 보이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봉수당진찬연

윤 2월 13일, 화성 행궁 봉수당에서 혜경궁의 회갑잔치가 열렸다.
정조와 신하들은 차례로 혜경궁에게 술잔을 올리며 축하했고, 시를 지어 만수무강을 빌었다.
혜경궁의 잔칫상은 70종이나 되는 음식들로 풍성하게 차려졌다.

또한 화려한 궁중음악과 무용도 이어졌고, 구경꾼들에게도 잔칫상이 차려졌다.
화려하고 성대한 잔치는 왕실 권위와 위엄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낙성연입니다.

1796년 화성행궁 낙남헌에서 화성의 완성을 축하하는 잔치인 낙성연입니다.

 

 

 

 

 

축성실은 화성의 축성 과정을 전반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화성행차 시 정조가 입었던 황금갑옷, 『화성성역의궤』와 화성유수 조심태에게 보낸

정조의 비밀편지, 정조의 문집인 『홍제전서』완질본 등이 전시됩니다.
이 중 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 대신 국정을 운영하면서 내린

 명령서인 사도세자 영서는 국내에 2점 밖에 없는 유물입니다.
아울러 모형 전시를 통해 축성 물자의 이동 경로와 재료에 따른 축성 방법을 살펴볼 수 있으며,

 둔전과 시전의 재연을 통해 도시로 발전해 가는 조선후기 수원의 모습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수원의 시전거리 모형입니다.

성안에 사는 사람들의 일용품 공급과 관청의 필요한 품품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18세기 말 수원 읍내의 신풍루 앞 대로 좌우에는 입색전, 어물전, 목포전, 상전, 미곡전,

 지혜전, 관곽전, 유철전 등이 있었고 가로변에는 기와집 상점들이 처마를 잇대고

계속 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정조가 추구한 대로 왕성한 상업 도시의 면모를 지녔음을 알 수 있다.

 

 

 

 

 

 

 

 

 

 

수원의 농지에서 물을대고 모내기를 하는 풍경의 전시울입니다.

 

 

 

 

 

 

 

 

 

 

 

 

 

 

 

 

 

 

 

 

화성성역의궤

축성에 관한 모든 기록을 『화성성역의궤』에 남겨 이 책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화성성곽 축성공사 모습을 보여주는 전시물입니다.

 

 

 

 

 

수원성곽의 3곳에 설치된 공심돈의 내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돌을 쌓아 2~3층의 누각을 세워 벽에 총구를 내어 사격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아래는 우리나라의 성의 축조형패를 보여주는 전물입니다.

 

백제초기에 만들어진 풍납토성입니다.

 

 

 

 

신라 자비왕때 축조한 삼년산성입니다.

 

 

 

 

 

고려 고종때 만들어진 강화외성입니다.

 

 

 

 

 

일본과 중국의  성의 축조방식을 보여주기 위한 모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