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여행] 화성행궁

2011. 4. 8. 00:04전국 방방곡곡 여행지/경기도 여행지

 

 

 

[수원여행] 화성행궁

 

화성행궁은 조선 후기 정치와 군사 및

사회문화의 변화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산이며,

 발굴조사 및 복원정비사업을 통해 조선시대 행궁의 모습을

재현할 수 있게 된 중요한 문화유적으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크다.

  또한 정조시대 실학정신을 바탕으로 위민과 개혁을 실천하고자한 역사적 공간이자
혜경궁 홍씨의 회갑진찬연을 베풀었던 효의 상징적인

공간이며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의 중심축이다.

 

 

 

 

 

 

 

낙남헌은 일제강점기에 화성행궁이 철거될 당시 훼손당하지 않고 남아있는 건축물중 하나다.
낙남헌이란 이름은 후한의 광무제가 낙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궁궐 이름을

'남궁(南宮)'이라 한 것에서 따온 것으로 1794년(정조 18)에 관공되었다.
1795년(정조 19)을묘원행시에는 각종 행사가 이 곳 낙남헌에서 치러졌다.
정조는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념하여 군사들의 회식을 이 곳에서 하였으며,

특별과거시험을 치러 문과 5명과 무과 56명을 선발 하였는데 급제자에게 합격증을 내려 주는

 행사도 이 곳에서 있었다.또한 정조는 혜경궁의 회갑연을 기념한 양로연을 시행 하였다.

 

 

 

 

 

 

낙남헌 앞에있는 활터입니다

 

 

 

제사를 맡아보던 관아건물인 전시청입니다.

 

 

 

 

 

 

 

운한각은 조선 제22대 임금이였던 정조의 초산화를 모셔놓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던 곳입니다.

 

 

 

 

 

 

 

 

 

 

운한각 내부의 모습입니다.

 

 

 

 

 

 

 

앞쪽에서 바라본 운한각입니다. 운한각 오른쪽으로는 복도각과 이안청 건물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풍화당은 회령전의 부속건물로 재실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제정입니다. 제사때 사용한 우물로 지금도 물이 솟아나고 있습니다.

 

 

 

 

 

 

경룡관은 장락당의 바깥문으로도 사용한 부속 건물이다. '

경룡'이란 제왕을 상징하는 큰 용을 뜻하는 것으로 당태종이 거처한 궁궐 이름에서 따 왔다.
정조는 당태종의 궁궐 이름을 차용한 이 건물에서 휴식을 취하며 조선의 태평성세를 구현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1794년(정조 18)에 세워진 경룡관을 2층 구조로 건물의 2층은 모두 마루를 깔아 누마루를 만들고,

아래층은 3칸의 널문을 만들어 '지락문(至樂門)'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중양문입니다. 행궁의 정전인 봉수당 바로 앞에서 봉수당을 지키는 문으로 있는 문으로 내삼문입니다.

 

좌익문입니다. 좌익은 곧 곁에서 돕는다는 뜻으로 내삼문을 도와 행궁을 지키는 중삼문입니다.

 

 

 

 

좌익문 옆에 있는 느티나무로 나무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 진다고 전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