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논산시 관촉동 논산 관촉사

2011. 8. 24. 22:38전국 절집이야기/사찰(寺刹) 이야기

논산 관촉사

 

충남 논산시 관촉동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인 관촉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논산시 관촉동 반야산에 자리하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큰 불상 중의 하나인 은진미륵으로 유명한 사찰이다.

석조미륵보살입상과 같은 시기에 지어졌다고 전하는 목조 건축물은 남아 있지 않다.

 전형적인 산지가람으로 본래의 사역은 현재보다 더 넓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968년(광종 19) 승려 혜명에 의해 조성된 석조미륵보살입상의 백호에서 발한 빛이

세상을 비추고 중국의 명승 지안대사가 그 빛을 찾아와 예불하면서

그 빛이 마치 촛불과 같다고 하여 절 이름을 관촉사라 하였다.

사적기 에 따르면 1386년(우왕 12) 법당과 정문이 중건되었으며,

1581년(선조 14)에는 백지가, 1674년(현종 15)에는 지능이,

그리고 1735년(영조 11)에는 성능이 각각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찰 내에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8호)를 비롯하여

 관촉사 석등(보물 제232호), 관촉사 석탑, 관촉사 배례석(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3호),

관촉사 석문(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79호), 관촉사 사적비 등의 문화재가 있다.

이중 좐촉사 석탑은 석등과 배례석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는 4층이나 체감률로 보아 5층으로 판단된다. 이중기단이나

하층기단의 지대석, 하대갑석, 하대중석, 하대저석 등은 지하에 매몰되어 있다.

상층기단은 하대갑석 상면에 올려 있다.


 

 

 

 

상대중석의 각 모서리에는 우주가 조출되어 있고

우주와 우주 사이에는 하나의 탱주가 모각되어 있다.

 상대갑석과 초층옥신 사이에는 별석 1매가 놓여 있다.

 별석의 상면에는 뚜렷하지 않지만 연화문이 복엽으로 조각되어 있다.

 탑신부의 옥개석에는 3단의 층급받침이 조출되어 있다.

상륜부는 특별한 조각이 없이 보주만 올려 있다.

 석탑의 전체 높이는 343㎝이다. 옥개석의

조각 솜씨로 보아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관촉사 사적비는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앞에 위치해 있다.

1743년(영조 19) 승려 각혜와 속인으로 구성된 불량계원 다수가 참여하여 조성한 것이다.

 비신에는 석조보살좌상을 만들 바위의 융기, 혜명에 의한 불상 조성, 관촉사란 사명의 유래,

 보살상의 보수, 보살상의 찬미 등에 관한 내용이 빽빽하게 적혀 있다.

 비신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크기는 60×30×133㎝이다. 귀부와 비좌 사이에는

 연꽃 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귀부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아래에 80×57㎝ 크기의 지대석이 놓여 있다.

 

 

 

 

현재 사역에는 일주문을 비롯해, 천왕문, 석문, 미륵전, 대웅보전, 관음전,

 명부전, 삼성각, 사명각, 현충각, 종루, 명용루, 요사 등의 전각이 배치되어 있다.

또한 돌리기만 하면 경전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하는

회전식 불경보관대인 윤장대도 세워져 있다.


 

 

 

 

이중 일주문은 관촉사 입구인 동네에 세워져 있으며 천왕문은 현 매표소와 인접해 있다.

천왕문에는 수미산을 사방에서 수호하는 호법신인 지국천(동방), 광목천(서방),

승장천(남방), 다문천(북방) 등이 각각의 지물을 들고 서 있다.

석문을 통과하여 경내에 들어오면 최근에 조영된 미륵전, 대웅보전, 명곡루 등의

 건물이 서 있으며 산 사면을 따라서 산신, 칠성, 독성이 모셔 있는 삼성각이 자리하고 있다.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 보물 제218호

 

창건 당시 조성한 ‘은진미륵’에 얽힌 설화가 전한다.

한 여인이 반야산에서 고사리를 꺾다가 아이 우는 소리를 듣고 가보았더니

 아이는 없고 큰 바위가 땅속으로부터 솟아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정에서는 바위로 불상을 조성할 것을 결정하고 혜명에게 그 일을 맡겼다.

혜명은 100여 명의 공장과 함께 970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006년(목종 9) 불상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불상이 너무 거대하여 세우지 못하고 걱정하던 어느날,

 사제총에서 동자 두 명이 삼등분된 진흙 불상을 만들며 놀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먼저 땅을 평평하게 하여 그 아랫부분을 세운 뒤 모래를 경사지게 쌓아

그 중간과 윗부분을 세운 다음 모래를 파내었다. 혜명은 돌아와서 그와 같은 방법으로 불상을 세웠다.

그런데 그 동자들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화현하여 가르침을 준 것이라고 한다.

불상이 세워지자 하늘에서는 비를 내려 불상의 몸을 씻어 주었고 서기(瑞氣)가 21일 동안 서렸으며,

미간의 옥호(玉毫)에서 발한 빛이 사방을 비추었다.중국의 승려 지안(智眼)이

그 빛을 좇아와 예배하였는데, 그 광명의 빛이 촛불의 빛과 같다고 하여 절이름을 관촉사라 하였다.

 

 

 

 

 

이 밖에도 이 불상에 얽힌 많은 영험담이 전하고 있다.

중국에 난이 있어 적병이 압록강에 이르렀을 때,

이 불상이 노립승(蘆笠僧:삿갓을 쓴 승려)으로 변하여 옷을 걷고 강을 건너니

모두 그 강이 얕은 줄 알고 물 속으로 뛰어들어 과반수가 빠져 죽었다.

중국의 장수가 칼로 그 삿갓을 치자 쓰고 있던 개관(蓋冠)이 약간 부서졌다고 하며,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또한, 국가가 태평하면 불상의 몸이 빛나고 서기가 허공에 서리며,

 난이 있게 되면 온몸에서 땀이 흐르고 손에 쥔 꽃이 색을 잃었다는 등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 불상에 기도하면 모든 소원이 다 이루어졌다고 한다. 1386년(우왕 12) 법당을 신축하였고,

 1581년(선조 14) 거사(居士) 백지(白只)가 중수하였으며, 1674년(현종 15) 지능(智能)이

, 1735년(영조 11) 성능(性能)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촉사 석등(論山 灌燭寺 石燈) 보물  제232호

 

관촉사 앞뜰의 큰 석불 앞에 놓여있는 4각 석등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이 중심이 되어,

아래에는 3단의 받침돌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평면이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고려식으로, 아래받침돌과 윗받침돌에 새겨진

 굵직한 연꽃무늬가 두터움을 드러내고 있다. 가운데받침은 각이없는 굵고 둥그런 기둥으로 세웠는데,

위아래 양끝에는 두줄기의 띠를 두르고, 중간에는 세줄기의 띠를 둘렀다.

특히 중간의 세 줄기 중에서 가장 굵게 두른 가운데 띠에는 8송이의 꽃을 조각하여 곱게 장식하였다.

 2층으로 이루어진 화사석은 1층에 4개의 기둥을 세워 지붕돌을 받치도록 하였는데,

기둥이 빈약한 반면 창은 터무니없이 널찍하다. 각 층의 지붕들은 처마가 가볍게 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네 귀퉁이에는 큼직한 꽃 조각이 서 있어 부드러운 조화를 이룬다. 꼭대기는 불꽃무늬가 새겨진

큼직한 꽃봉오리모양의 장식을 두었는데, 조각이 두터워서 인지 무거워 보인다.
전체적으로 뒤에 서 있는 석불 못지않게 힘차 보이나, 화사석의 네 기둥이 가늘어 균형이 깨지고,

받침의 가운데기둥이 너무 굵고 각이 없어 그 효과가 줄어든 감이 있다.

뒤의 석불 즉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8호)과 함께

고려 광종 19년(968)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남한에서는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국보 제12호) 다음으로 거대한 규모를 보여준다.
자료출처~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