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여행]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99호 강릉향교

2011. 12. 10. 06:30전국 문화재와 박물관/국가지정 문화재

 

[강릉여행]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99호 강릉향교,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고려 충선왕 5년(1313)에 처음 세운 후 조선 태종 11년(1411)에 화재로 없어진 것을 태종 13년(1413)에 다시 지었다. 그 후 여러 차례의 수리가 있었으며, 인조(재위 1623∼1649) 때에는 크게 늘려지어 웅장한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화부산 아래 경사진 곳에 위치하여 위쪽에는 제향공간인 대성전(보물 제214호)을, 아래쪽에는 강학공간인 명륜당을 배치한 전학후묘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제향공간에는 대성전을 중심으로 양쪽에 동무와 서무가 있고, 이를 연결하는 통로인 회랑이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안자와 자사·증자·맹자를 모시고 있으며, 동·서무에는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를 모시고 있다. 학생들이 모여서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은 2층 누대 형식의 건물로, 아래층은 기둥만 세우고 벽을 쌓지 않아 통로로 이용하도록 하였다. 이 외에 학생들의 생활공간인 동·서재와 부속건물 등이 남아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로부터 토지와 책·토비 등을 지급 받아 운영하였다.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의 기능만 남아있으나, 명륜고등학교를 향교에서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소장되었던 책은 한국전쟁으로 대부분 불타 없어졌으며, 현재『공부자성적도』등 70여 권만 남아있다.

 

 

 

 


현재 다른 지역의 향교는 동·서무에 있는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를 대성전에 함께 모시거나 철거하였는데, 강릉향교에서는 조선시대의 양식 그대로 모시고 있다. 또한 지방향교로는 그 규모가 웅장한 편이고, 한국전쟁 때에도 건물이 불타지 않아 옛 규모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향교이다.

 

 

 

 

 

 

 

 

 

 

 

 

 

 

 

 

 

 

 

 

 

강릉향교(江陵鄕校)의 묘정비(廟庭碑).

강릉향교()의 명륜당 좌측에 있다.

공자()의 행적을 찬양하기 위해 세웠으며

 비문은 당나라말기 최고의 문필가인 피일휴()가 지었고,

김진백()이 글씨를 썼다. 전면에는 예서체

‘공부자묘정비()’라는 비제가 새겨져 있다. 

 

 

 

 

 

 

 

 

 

 

 

 

 

 

 

보물 제214호 강릉향교 대성전 (江陵鄕校 大成殿)

 

강릉향교는 옛 성현께 제사를 드리고 학문을 갈고 닦는 곳으로, 성균관을 제외한 지방 향교로는 규모가 가장 크다. 고려 충선왕 5년(1313) 강릉 존무사(存撫使)였던 김승인이 세웠다. 조선 태종 11년(1411)에 불에 타, 2년 뒤 강릉도호부판관 이맹상의 건의로 다시 세웠고 몇 차례에 걸쳐 수리를 하였다.
제사를 지내는 공간의 중심 건물인 대성전은 태종 13년(1413)에 지은 것으로 공자를 비롯해 중국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무게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간결하게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건물 안쪽은 바닥에 판석을 깔았고 천장은 뼈대가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꾸몄다.
이 지방의 많은 선비와 학자를 배출한 강릉향교의 제사 공간을 대표하는 전통깊은 건축 문화재이다.

 

 

 

 

고려(高麗) 인종(仁宗) 5년(1127) 이 향교의 역사는 시작되나 충선왕(忠宣王) 5년(1313) 강릉도(江陵道) 존무사(存撫使) 김승인(金承印)이 화부산(花浮山) 밑에 문묘(文廟)를 갖춘 향교를 건립하여 비로소 체계를 갖추었다. 그러나 조선(朝鮮) 태종(太宗) 11년(1411) 화재(火災)를 당하여 그 2년 뒤 강릉도호부(江陵都護府) 판관(判官) 이맹상(李孟常)의 발의(發議)로 중건(重建)되었고, 수차 중수(重修)가 있었다.

 

 

 

 

순종(純宗) 융희(隆熙) 3년(1909)에는 화산학교(花山學校)를 설립(設立)하여 신학문(新學問)을 교육하던 중 1910년 일제(日帝)에 의하여 폐교(廢校)되고 양잠전습소(養蠶傳習所)를 설치(設置)한 적도 있었다. 향교는 당시 초등교육장(初等敎育場)인 서당(書堂)공부를 마친 선비들이 공부하던 중등(中等)교육장으로 지방(地方) 최고(最高) 교육기관(敎育機關)이었다. 이곳에서 수학(修學)하면 사마시(司馬試)에 응시(應試)할 자격을 갖게 되며, 사마시에 합격하면 진사(進士)나 생원(生員)의 칭호(稱號)를 받게 된다. 생원, 진사가 되면 서울의 성균관(成均館)에 들어가 문과시(文科試)에 응하여 고급관위(高級官位)에 오르게 된다. 이 향교는 그 시설(施設)과 학제(學制)가 성균관과 같고 규율(規律)이 엄정(嚴正)하고 면학(勉學)의 기운이 드높아 대무관(大廡館)이라 일컬음을 받았고 수많은 유현(儒賢)을 배출하였다. 경내(境內)에는 문묘에 속하는 대성전(大成殿), 동(東)·서무(西廡), 전랑(殿廊)과 향교에 속하는 명륜당(明倫堂), 동(東)·서재(西齋)가 있는데, 서로 연결되어 한 건물군(建物群)을 이루고 있으며, 규모나 전통(傳統)에서 전국 향교 중 가장 오래 되었다.

 

 

 

 

 

 

 

 

 

 

 

 

 

 

 

 

 

 

 

 

 

 

 

 

명륜고등학교

향교에서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