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여행] 화천민속박물관

2011. 12. 18. 18:00전국 문화재와 박물관/국내 박물관

 

화천민속박물관

 

화천 민속 박물관은 화천 고유의 민속 문화 발굴 및 재현목적으로 설립되었으며, 잊혀져 가는 민속 문화를 되살려 전통문화계승과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하였습니다. 특히 산촌과 하천 생활을 바탕으로 사람과 자연이 한데 어우러지는 자연 친화적인 면에 중점을 두고 건립하였습니다.
전시관은 1층(선사유적 전시실) 과 2층(민족 생활 전시실)으로 구분 되어있습니다. 1층에는 화천 용암리에서 발굴청동기 시대의 토기, 도구, 장신구와 집자리 등 선사 유적과 유물이 전시되어 있으며, 1층 교육 체험실 에서는 매주 다양한 체험과 함께 전통의상 체험 프로그램이 상시 개방되어 있어 언제든 전통의상을 입어볼 수 있고 기념촬영도 가능합니다. 2층에서는 민족 생활 전시물과 함께 산촌과 하천마을의 일상을 재미있는 영상과 이야기로 풀어내 아이들과 어른 모두 우리 민족의 생활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또한 자칫하면 죽은 공간이 될 뻔 한 계단 밑 틈새와 남는 공간을 한국적인 인테리어와 자연 친화적인 나무 마루로 단장하여 2010년 7월 ‘어린이 한실 도서관’ 을 개관, 많은 어린이들과 관람객이 편히 쉬다 갈수 있는 공간으로 가꾸어 놓았습니다. 박물관 앞마당에는 아이들과 가족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잔디마당너와 지붕 정자, 연자방아, 전통 그네 등 우리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시설물들이 마련되어있습니다.

 

 

 

 

 

 

 

 

 

 

 

 

 

 

신사유적전시실

용암리 유적은 강원도 화천군 하남면 용암리 1115번지 ( 현 체육공원) 일대 36,886(약 11,158평)을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대대적인 발굴조사 결과 나타난 것으로, 발굴결과 청동기 시대 집자리 176기, 수혈유구32기, 굴립주건물 14동, 토광묘 11기등 유구의 수가 230여기가 넘어 국내 최고의 밀집도를 보여주는 청동기 시개의 집단 취락 유적지이다. 이 유적의 시기는 기원전 9세기 전후로 추정되며 출토 유물은 박편의 일부를 갈아 인부를 만든 석기 (박편석기)가 대량으로 출토되었고, 다양한 형태의 석부와 석촉을 비롯, 청동기 시대의 유적에서 나타나는 대부분의 석기들이 출토되어 석기 제작과정 및 변환과정을 밝힐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특히 청동기 시대 북한강 유역의 생활문화양상과 주거발달사 연구, 청동기 문화의 전파경로를 밝혀줄수 있는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며, 동아시아에서도 유례가 드문 마을 유적이라는 점에서 보존가치가 크다.

 

 

 

 

 

 

 

 

의복체험실

 

 

 

 

 

화천군은 원래 고구려때생천군(牲川郡) 또는 야시매(也尸買)로, 통일신라때는 낭천(狼川)이라 불리웠으며, 고려 성종 14년 삭방도의 관할에 있다가 명종8년 춘주도가 설치됨에 따라 삭방도를 폐하고 이의 관할로 되었다. 그후 조선 태종 13년 현감을 두었다가 인조 23년에 폐현하고 지금의 금화에 있던 도호부 관할로 되었다가 뒤에 다시 복현되었으며 고종 39년 화천(華川)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른다. 을사조약 이후인 1910년 하서면과 남면을 하남면으로, 상면과 서면을 상서면, 간척면과 원동면을 간동면으로 각각 통폐합하였고 1941년의 화천댐 건설로 인하여 간동면의 사무소를 구만리에서 유촌리로 옮기게 되었으며 동촌리와 미수 몰된 태산리의 일부가 화천면으로 편입되었다. 한편, 1945년까지 춘천군의 관할에 있던 사내면은 광복과 더불어 공산치하의 금화군 관할로 있다가 6.25동란이후 군정을 거치는 동안 다시 경기도 포천군에 속 하 였었고 1954년 본군 관할로 들어오게 되었다. 수복이후인 1954년 각 면사무소의 위치가 변경되었으니 화천면사무소는 상리에 서 아리로, 상서면사무소는 노동리에서 파포리로, 사내면사무소는 광덕리에서 사창리로 이전, 각각 오늘의 위치에 소재하게 되었으며, 1964년 간동면 구만리 에 화천면 동촌출장소와 간동면 구만출장소를 설치, 유지해 오다가 1981년 동촌출장소가 폐지되면서 하남면 위라리에 강남출장소가 설치되었고, 화천면은 1979 년 대통령령 제9409호에 의하여 화천읍으로 승격되었다. 또한 리 단위 행정구역은 1954년 용암리에서 삼화리가, 논미리에서 안평리, 유촌리에서 용호리, 구만리에서 도송리, 신풍리에서 신대리, 구운리에서 장촌리, 노동리에서 부촌리가 각각 분리되어 7개리가 증설 오늘의 40개 법정리로 되었 으며 행정리는 1961년 이후 1985년 3월까지 18회에 걸쳐 41개리가 증설되어, 현재 화천군은 1개읍, 4개면에 81개리를 유지하고 있다.

 

 

 

화천군은 면적의 86.2%가 산지로 형성된 산악지대로서 서부에는 광주산맥이 북동에서 남서로 뻗어있고 동부는 태백산맥의 지맥들이 험준한 고산지대를 이루면서 불규칙하게 분포되어 있다. 산사면은 간동면 오음리, 유촌리 일부에 와사면을 이루고 있는 곳도 있으나 대체로 직선상의 급경사지가 대부분이며, 특히 표고 1,000m가 넘거나 내외의 고산들이 곳곳에 분포하면서 산악지를 형성하고 예리한 산릉을 보여주는 곳이 많다.
수계는 금강산에서 발원하는 북한강을 본류로 남류하고 있으며 북한강에 유입하는 본류의 수계 대부분은 1, 2차수 하천으로서, 수지상 패턴을 이루고 있으며 하상에는 기반암이 노출되어 있는곳이 많다.
화천군 일원의 지질 기반을 이루고 있는 것은 선캠브리아기 경기 변성암 복합체춘성계 쥬라기의 대보화강암, 시대미상의 화강반암 또는 애플라이트제4기 충적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지역의 토양은 북한강 본류천변은 사양질 내지 사질로서 배수가 양호하고 산간곡간지에 분포하는 토양은 대부분 자갈이 많은 치양질 충적토가 대부분이며 구릉지 및 산록 경사지에 분포하는 자갈이 있는 사양질 및 치양질 토양으로서 배수는 양호한 편이나 곳에 따라 토양침식이 이루어진 곳이 많다.

 

 

 

 

 

화천지방은 한반도 내륙 중앙 산악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내륙산악 지방의 대륙성 기상특성이 나타나고 있으며 기온은 대체로 여름철은 고온, 겨울철은 저온을 나타내고 기온교차가 비교적 큰 지역이며 강수량은 연중 중국내륙으로부터 이동해오는 저기압의 영향과 여름철 남서 계절풍이 몰려오는 습기 태백산맥에 부딪혀 많은 비를 내리게 하고 있다. 겨울철에 강설은 주로 중부지방을 통과하는 저기압 때문이나 강원도 영동지방의 강설량 보다는 훨씬 적게 내리게 하고 있다. 바람은 겨울철에는 한냉 건조한 북서 계절풍이 주를 이루고 여름에는 고온다습한 남서계절풍이 많이 불고 봄가을은 편서풍이 강하게 부는 때가 있다. '2001년도를 기준으로 화천지역의 연평균 기온은 10.8℃로서 강원도의 영동지역 보다는 낮으며 연평균 강수량은 1,188㎜로써 우리나라 남부지방이 1,500mm, 중부지방이 1,300mm 정도보다 낮다.

 

 

 

 

 

 

 

 

 

민속생활전시실

화천의 주거와 의(衣)생활
저릅집 : 화천 지방의 토산품으로는 삼(대마)이 유명하다 하였다. 따라서 예부터 화천지방에서는 삼(대마)껍질로는 옷을 만들고 줄기는 엮어서 짚대신 이엉으로 사용했는데 이를 저릅집이라고 한다. 저릅집은 지붕을 갈아주는 시기가 오래가며 물이 잘 빠지고, 속이 텅빈 대마 줄기가 단열재로서 기능을 하여 겨울에 따듯하고 여름에 시원하다.
화천의 농경생활
농목짱치기 : 농목 짱치기는 강원 산간의 대표적인 민속 놀이로 젊은 농군들이 짱이라는 나무공이나 짚 공을 지게 작대기로 쳐서 자기의 골문에 넣는 놀이이다. 마을대 마을의 대항으로 진행되며 화천군 상서면 신풍리 남쪽에 있는 거북둔지마을과 옹기점마을에서 벌어지는 놀이로 유명하다.
곡운구곡도
화천 용담리 일대에서 40년 가까이 은둔생활을 했던 곡운 김수증 선생이 빼어난 경치에 이름을 붙인 뒤 조세결에게 그리게 한 작품이다곡운 김수증은 병자호란 때 척화파로 청나라에 끌려갔던 삼학사의 한 사람인 청음 김상헌의 손자로 본관은 안동 호는 곡운이다. 곡운은 1650년 생원시에 합격관직에 몸담기 시작하여 1675년결 동생 김수향과 송시열이 당쟁으로 유배되자 관직을 버리고 현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에 들어와 그곳의 아름다움에 끌려 원래의 지명인 사탄을 개칭하여 곡운이라 부르고 식구들을 모두 데려가 살면서 곡운정사와 능수정을 지었다. 곡운구곡도는 곡운구곡과 농수정을 포함한 실경을 열폭 비단위에 담채로 그렸으며, 그림이 완성된지 10년 후 곡운 자신과 두 아들, 다섯 조카들, 외손자까지 모두 아홉 사람이 치서에 따라 무이도가에 치운 하여 곡운의 매곡을 묘사하는 칠언절구의 시를 지어 화첩을 만든 것이다. 특히 조선시대 실경산수회중 유일하게 실제 경치와 일치하는 작품으로서 문화적 가치가 크다.
계성사지석등
이 석등은 화천군 하남면 계성리 옛 절터자리 (계성사지) 에 있는 고려시대 초기의 석등이다. 일반적으로 석등은 불을 밝혀드는 화사석이 중심이 되어 아래로는 이를 받쳐주는 3단의 받침돌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이 있다. 석등의 화사석은 신라시대에는 8각, 고려시대에는 4각인 것이 일반적인데 계성리 석등의 경우 독특하게 6각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또한 전라도 지방에서 유행했던 장고모양의 원형 기둥이 흥미롭다.

 

 

 

 

 

화천의 지정문화재

 

1

계성사지 석등

보물 496호

1968.12.19

계성리 586

국가

2

위라리 칠층석탑

유형문화재 30호

1971.12.16

위라리 398-2

3

화천향교

문화재자료 102호

1985.1.17

하리 108

4

화음동정사지

기념물 63호

1990.5.31

삼일리 1097

5

성불사지 석불임상

유형문화재 115호

1996.2.27

유촌리산 20-2

6

성불사지 석장승

민속자료 5호

1996.2.27

유촌리산 20-2

 

 

 

 

화천의 등록문화재

 

명칭

소재지

건물연면적

등록일자

비고

인민군사령부막사

상서면 다목리

350㎡

2002.5.27

문화재청(제27호)

화천수력발전소

간동면 구만리

3,533㎡

2004.9.4

문화재청(제109호)

화천군 꺼먹다리

간동면 구만리

207㎡

2004.9.4

문화재청(제110호)

 

 

 

 

화천의 기념물

명칭

소재지

연면적

등록일자

비고

용암리 선사유적

하남면 용암리 1121번지외 34필지

76,690㎡

2004.1.17

도기념물 제83호

 

 

 

 

 

 

 

 

 

 

 

 

 

 

 

 

 

 

 

 

 

 

 

 

 

 

 

 

 

 

 

 

 

 

 

 

 

 

 

 

 

 

 

 

 

 

 

 

 

 

 

 

 

 

 

 

 

 

 

 

 

 

 

 

 

 

 

 

화천민속박물관

주소~강원도 화천군 하남면 위라리 490

홈페이지~http://www.hcfm.or.kr/

전화~033-440-28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