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하나로 세상을 담아낸 묵성(墨聖) 겸재정선기념관

2012. 2. 9. 06:30우리 문화예술 공연전시 /문학관,미술관,기념관

붓 하나로 세상을 담아낸 묵성(墨聖) 겸재정선기념관

 

양천현령으로 부임한 겸재의 나이는 예순 다섯살 이후 5년간을 양천에서 머물렀다.

이 시기에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는 만개를 넘어 원숙의 경지에 이른다.

겸재정선기념관은 양천현아가 있던 궁산아래에 들어서 있다.

궁산에서 바라본 풍경들은 모두 그의 붓끝으로 전해지고 있다.

 

 

 

 

붓 하나 벗 삼아

팔도를 돌아다닌 겸재 정선의 삶은 진경산수로화로 대변된다

그의 손끝에서 독창적인 화법의 진경 산수가 그려졌다.

특히 중국의 관념산수의 틀을깨고 여든네살까지 장수하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

 

 

 

 

 

겸재 정선은 팔도를 여행하며 우리산하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진경산수의 세계를 열었다. 이후 조선의 산수화도 크게 변화했다.

하지만 마흔살 이전의 삶은 기록으로 남은것이 많지 않다.

그  이후로는 동문수학했던 이병연과 우정을 나누며 서로의

예술세계의 끊임없이 영향을 미쳤다. 30대에 그린 겸재 정선의 명작

신묘년풍악도첩,해악전신첩은 이병연의 초청으로 금강산 유람 후 그렸다.

겸재가 일흔살에 그린 대표작 인왕제색도는 죽음을 앞둔 벗 이병연의 대한 마음을 담았다.

 

 

 

 

 

겸재 정선과 그의 벗 이병연의 예술적 교류가 절정에 달한 시기는 겸재가 양천현령을 지낼때이다.

당시 벗과 떨어져 있으면서 주고 받은 시와 그림을 엮은것이 경교명승첩이다.

시를 건네면 그림으로 답하는 형식이다. 겸재의 나이 예슨다섯에서 일흔에 이르는 시기이다.

그러니 겸재의 삶에서 양천이 갖는 의미는 크다. 옛 양천땅에 겸재정선기념관이 자리한 이유이다.

 

 

 

 

 

재 정선이 년동안 근무했던 양천현은 지금의 강서구 일대다.

궁산근린공원 앞에 겸재정선기념관이 있다.

74.6m의 궁산아래로 조선시대에는 양천현아가 있었다. 

 

 

 

 

 

겸재정선기념관 첫자리는 양천현아실이 차지하고 있다.

겸재가 5년간 근무했던 양천현아의 축소모형이 전시 되어있다

당시 양천현아의 모습을 한눈에 알아 볼 수있고 강서구의 역사도 소개한다.

겸재의 진경산수화와 양천지역을 같이 표시했다.

 진품은 아니지만 겸재의 작품세계의 이해를 돕는다.

 

 

양천현아 모형도

 

 

 

 

 
 

 

 

 

 

 

 

 

 

 

겸재정선기념관 2층에는 진경산수 체험학습실이다.

아이들의 체험학습공간으로 제격이다. 멀티미디어와 터치스크린을 활용해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스템프를 이용해 겸재의 화폭에 자신의 진경산수를 그리는 체험등 지루한 박물관의 개념을 깨뜨린다.

겸재정선기념실에서는 겸재의 생애를 좀더 깊이있게 마주한다.

 

 

 

 

 

 

 

 

 

 

3층은 휴게공간으로 카페테리아와 전시실을 겸한 다목적공간, 뮤지엄숍이 자리한다

3층 바깥에는 궁산으로 길이 이어진다. 삼국시대 지어진 양천고성지와

서울에서 유일한 양천향교지가 있다. 궁산은 전망이 좋기로 유명하다.

서울시 우수조망명소의 한곳이다. 겸재가 소악루에서 달을 기다리며 그린

소악후월과 비슷한 경관을 볼 수있다. 영조는 천한 기술로 관등에 오르는것은

부당하다는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겸재가 여든한살때에 종2품 벼슬을 내렸다.

 

 

 

 

겸재정선기념관

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1동 243-1

02-2659-2206

http://jeongseon.gangseo.seoul.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