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6. 6. 16:00ㆍ전국 문화재와 박물관/국가지정 문화재
[서울/문화재탐방] 환구단 (圜丘壇) 사적 제157호
환구단(圜丘壇)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곳이다.
우리나라의 제천행사는 농경문화의 형성과 함께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삼국시대부터는 국가적인 제천의례로 시행된 것으로 믿어진다.
고려 성종 2년(983) 정월에 처음 시행되어 설치와 폐지를 계속 되풀이하다가 조선초에 제천의례가 억제되자 폐지되었다. 세조 2년(1456)에는 일시적으로 제도화하여 1457년에 환구단을 설치하고 제사를 드리게 되었다. 그러나 세조 10년(1464)에 실시된 제사를 마지막으로 환구단에서의 제사는 중단되었다. 환구단이 다시 설치된 것은 고종 34년(1897) 조선이 대한제국이라는 황제국으로 이름을 바꾸고,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부터이다.
현재 환구단의 터에는 황궁우와 석고 3개가 남아있다. 황궁우는 1899년에 만들어진 3층의 8각 건물이며, 석고는 악기를 상징하는 듯한 모습으로 화려한 용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1913년 일제에 의해 환구단은 헐리고 그 터에는 지금의 조선호텔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 단< 壇 >은 일명 환구단< 圜丘壇 > 또는 줄여서 원단< 원壇 >이라고도 한다. 이는 지신< 地神 >에 제사드리는 사직단 < 社稷壇 >이 음양론< 陰陽論 >에 따라 방형으로 쌓은 것과는 달리, 하늘에 제사드리기 때문에 원형< 圓形 >으로 쌓은 것이다. 광무< 光武 > 원년< 元年 >(1897) 10월 고종황제< 高宗皇帝 >의 즉위를 앞두고 남별궁< 南別宮 >터에 환구단< 圜丘壇 >을 쌓았고, 10월 11일 고종이 백관을 거느리고 친히 환구단에 나아가 천신< 天臣 >에 고제< 告祭 >한 후 황제위< 皇帝位 >에 나아갔다. 그러나 후일 일제< 日帝 >는 1911년 2월에 환구단의 건물과 기지< 基地 >를 총독부 소관으로 하고, 1913년 환구단을 헐고 그 자리에 건평 580여 평의 조선총독부 철도호텔(조선호텔)을 지었다. 그에 따라 지금은 단< 壇 >의 북쪽 모퉁이에 있던 신위< 神位 >를 봉안하였던 황궁우< 皇穹宇 >의 팔각당< 八角堂 >만이 대한제국< 大韓帝國 >의 기울어진 국운을 함께 슬퍼하며 서 있는 것이다. 글출처~문화재청
환구단 황궁우 내부모습
환구단< 壇 >의 북쪽 모퉁이에 신위< 神位 >를 봉안하였던 황궁우 팔각당(八角堂)
환구단삼문
환구단석고
환구단 정문
일제에 의해 환구단이 헐린터에는 현재 조선호텔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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