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27. 09:30ㆍ전국 문화재와 박물관/국가지정 문화재
[서울/문화재탐방] 명동성당 (明洞聖堂) 사적 제258호
명동성당은 코스트(Coste) 신부가 설계하였고 파리선교회의 재정지원을 얻어 건립되었다. 본래 순교자 김범우의 집이 있던 곳으로, 블랑주교가 김 가밀로라는 한국인 명의로 사들였다. 그후 1887년 한국과 프랑스사이에 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1898년 완성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벽돌로 쌓은 교회이며, 순수한 고딕식 구조로 지어졌다. 평면은 십자형이며 본당의 높이는 23m, 탑의 높이는 45m이다. 고딕양식의 장식적 요소를 배제하면서 그대로 본떴고, 공간의 고딕적 느낌은 외부보다 내부에서 더 강하게 주어졌다.
건축에 사용한 벽돌은 우리 나라에서 만든 것으로, 그 모양이 20여종에 달할 뿐 아니라 색깔도 붉은것과 회색 2종류가 있다. 이들을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써 조화있고 아름다운 건물을 완성하였다.
이 성당은 약현(藥峴)성당을 설계한 바 있는 파리 외방선교회의 고스트(Eugence Jan, George Coste)신부의 설계로 파리 외방선교회의 재정지원을 얻어 건립되었다.
본래 이성당이 선 자리는 순교자 김범우의 집이 있던 곳으로서 블랑주교가 김 가밀로라는 한국인 명의로 매수하였었다. 그후 1887년 한불통상조약이 체결되자 대성당을 건축하기 위해 이곳 종현 언덕을 평평하게 고르고, 1892년 8월5일 정초식을 갖고, 1894년 공사를 착공하였는데 당시 한국의 여건이 좋지않아 중국인 벽돌공, 미장공들을 데려와 공사를 진행시켰다. 1896년에 벽체공사가 대체적으로 끝나고 성축식(聖祝式)을 올린 것은 1896년 5월 29일이다. 1947년에는 성당수리와 피뢰침시험을 하였고 1973년 낙성75주년을 계기로 대보수공사가 있었다.
평면은 라틴십자형 삼랑식(三廊式)으로 평면중앙에 네이브(네이브)를 두고, 좌우에 아일(Aisle)을 두었는데 양 트란셉트(transcept)는 한 스판정도로 본격적인 라틴십자형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외관은 붉은벽돌로 쌓아 중후한 맛이 나는데 20여종의 이형벽돌을 만들어 세부설계에 부응하도록 하였다. 또 필요한 곳에는 회색벽돌을 사용하였다. 정면 출입구, 각 창의 형태는 뾰죽아취(Pointed arch)를 사용, 고딕양식을 이루고 대첨탑은 본당높이보다 비례상으로 낮아보이나, 주변에는 소첨탑들로 장식하였다. 종탑의 좌우측, 네이브와 아일의 경계 지점에는 다각형평면의 소탑(Turret)들이 서 있다.
내부마감은 고스트신부의 별세로 위돌박(Victor Poisnel)신부가 맡아 마무리하였다. 제대부와 신자석 사이에는 영성체난간(Communion rail)이 있는데 초기성당인 대구 계산(계산)성당의 것과 함께 현존하는 중요한 유물이다. 그러나 이 성당의 것은 본래 금속이었으나 2차대전때 일본인들이 강탈하여 나무로 만든 것이 전하고 있다.
천장은 리브볼트(Ribbed vault)이고, 기둥에는 주(主)피어(Main Pier) 부(副)피어(Minor pier)등이 모여 하나의 족주((簇柱), Clustered pier)를 이루고 있다. 후진(Apse)은 각으로 꺽여있고, 제대 뒤로 장발(張勃)의 12종도(宗徒)를 사실적으로 그린 벽화가 있다. 글출처~문화재청
주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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