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여행] 정지용 시인의 일대기를 주제로한 시대극

2012. 7. 16. 06:00우리 문화예술 공연전시 /공연,전시회

 

 

 

 

[옥천여행] 정지용 시인의 일대기를 주제로한 시대극

 

 

 

옥천향수오일장을 알리고자 문전성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상업적으로 침체된 전통시장에 문화의 숨결을 불어넣어

전통시장을 지역문화공간이자 일상의 관광지로 활성화하기 위해

옥천시장 옆 금구천을 가로지르는 다리위의 임시 무대에서 지용시인의

일대기를 주제로한 연극이 공연되었다. 지용시인의 일생을

일본 도지샤 대학 유학기로부터 북한군에게 납북될때까지

네개의 기간으로구분하여 연극, 무용, 가곡, 합창, 시낭송 등의

다양한 형태가 섞인 종합예술공연으로 선보였다.

출연진은 옥천역부터 향수 5일장터까지 함게 퍼레이드를 한

배우들과 합창단 그리고스포츠댄서, 성악가, 그리고 지용시인의

대표시를 외워 낭송하신 옥천장의 상인인 세분의 할머님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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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의 프로그램소개

 

 

문학평론가 박태상이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정지용 시인은 1950년 납북되던 중에 미군의 폭격으로 사망하였다고 합니다. 

 분단된 조국이 아니었더라면 우리에게 더욱 더 많은 주옥같은 시를 남겼을텐데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를 추모하고 사랑하는

그의 고향 옥천 사람들은 그를 기리며 연극 무대를 만들었다.

 

 

옥천 향수 5일장 프로젝트를 총지휘하신 분의 인사말씀

 

 

 

정시용시인은

1902년 5월 15일 충청북도 옥천()에서 출생하였다.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도시샤[]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모교의 교사, 8·15광복 후 이화여자전문 교수와 경향신문사() 편집국장을 지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순수시인이었으나, 광복 후 좌익 문학단체에 관계하다가 전향,

보도연맹()에 가입하였으며, 6·25전쟁 때 북한공산군에 끌려간 후 사망했다.
1933년 《가톨릭 청년》의 편집고문으로 있을 때,
이상()의 시를 실어 그를 시단에 등장시켰으며,

1939년 《문장()》을 통해 조지훈(박두진(박목월()의 청록파(鹿)를 등장시켰다.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를 구사하여 대상을 선명히 묘사, 한국 현대시신경지를 열었다.

작품으로, 시 《향수()》 《압천()》 《이른봄 아침》 《바다》 등과, 시집 《정지용 시집》이 있다. 


 

 

 

 

 

 

일본 도시샤[]대학 유학기의 지용

 

제1막은 1926년 휘문고보의 교비생으로 정지용시인의

일본 교토의 도시샤 대학 영문과생으로 카페 프란스 등

문단활동을 하였던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카페 프란스

              정지용

 

옴겨다 심은 棕櫚(종려)나무 밑에
  빗두루 슨 長明燈(장명등) ,
  카페 프란스에 가쟈.

  이놈은 루바쉬카
  또 한놈은 보헤미안 넥타이
  뻣적 마른 놈이 압장을 섰다.

  밤비는 뱀눈 처럼 가는데
  페이브멘트에 흐늙이는 불빛
  카페 프란스에 가쟈.

  이 놈의 머리는 빗두른 능금
  또 한놈의 心臟(심장)은 벌레 먹은 薔薇(장미)
  제비 처럼 젖은 놈이 뛰여 간다.  
  
  "오오 패롵(鸚鵡) 서방!  꾿 이브닝!"

  "꾿 이브닝!" (이 친구 어떠하시오?)"

  鬱金香(울금향) 아가씨는 이밤에도
  경사(更紗) 커-틴 밑에서 조시는구료!

  나는 자작의 아들도 아모것도 아니란다.
  남달리 손이 히여서 슬프구나!
  나는 나라도 집도 없단다
  大理石 테이블에 닷는 내뺌이 슬프구나!

  오오, 異國種 강아지야
  내발을 빨어다오.
  내발을 빨어다오.                          

 

 

 

 

 

연극 막간에 지용시의 낭송과 성악가의 가곡도 듣습니다.

 

 

 

 

 

 

1막 마지막부분에는 사의 찬미 노래를 부릅니다.

 

사의 찬미

 

광막한 광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는 무엇을 찾으려 왔느냐


이래도 한평생 저래도 한평생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녹수청산은 변함이 없건만

우리 인생은 나날이 변한다


이래도 한평생 저래도 한평생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막간에 멋진 스포츠댄스도 관람 합니다.

 

 

 

 

 

 

 

 

정지용시인과 이상의 대화

제2막은 정지용시인이 대학을 졸업하고 1935년 첫시집을 내는 등

경성에서의 일제시대 어렵게 문인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정지용시인은 가톨릭 청년 편집고문으로 있을때 이상을 등장 시켰으며

문장(章)을 통해 많은 청록파(鹿) 시인들을  등장시켰다.

 

 

 

 

 

백록담(白鹿潭)

                          정지용

 

1

絶頂에 가까울수록 뻐꾹채꽃 키가 점점 消耗된다.

한 마루 오르면 허리가 스러지고 다시 한 마루 우에서 모가지가 없고 나중에는 얼굴만 갸옷 내다본다.

花紋처럼 版박힌다. 바람이 차기가 咸鏡道 끝과 맞서는 데서 뻐꾹채 키는 아주 없어지고도

 八月 한철엔 흩어진 星辰처럼 爛漫하다. 山 그림자 어둑어둑하면 그러지 않아도 뻐꾹채 꽃밭에서 별들이 켜든다

. 제자리에서 별이 옮긴다. 나는 여기서 기진했다.

 

 

 

 

 

지용 시인을 대표하는 시 "향수"는 대중적으로 폭발적으로 " 향수라는 노래"로 히트를 하였다.

처음에는 "고향이란 제목으로 박화목선생이  작곡을 하여 " 불러지게 되었다.
월북작가라는 이유로 가사를 바꾸어 노래로 탄생되었고 " 이은상 선생의 그리워"

망향 35년간 불러지다가 원래의 그리워로  돌아오게 된 우예곡절도 있었다.
향수라는 시를 노래로 작곡한 사람은 클래식하면서도 대중적인 작곡가 김희갑선생의 작품이다.

김희갑 선생은 "립스틱 짙게 바르고의 작곡가"이다. 김희갑 작곡가의 부인은 시인 양인자씨다.

 

 

 

 

 

            정지용

 

하늘 우에 사는 사람
머리에다 띠를 띠고

이땅우에 사는 사람
허리에다 띠를 띠고

땅속나라 사는 사람
발목에다 띠를 띠네.

 

 

제3막은 정지용시인이

고향 옥천에서 환영을 받는 모습을 보여주며

향수5일장의 상인 옥천시장 할머니 3분(김이숙, 강경자, 이종님)이 

외운 정지용의 시를 직접 낭독합니다.

 

 

 

 

 

옥천시장에서 푸성귀등을 파시는 할머님 들이

지용 시인의 시를 외워 낭송하자 많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고향

            정지용

 

고향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 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에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 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 쓰다

 

고향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산너머 저쪽

              정지용

산너머 저쪽에는
누가사나 ?


뻐꾸기 영 우에서
한나절 울음 운다.

산너머 저쪽에는
누가 사나 ?

철나무 치는 소리만
서로 맞아 쩌 르 렁 !

산너머 저쪽에는
누가 사나 ?

늘 오던 바늘장수도
이 봄 들며 아니 뵈네

 

 

 

 

 

옥천공설시장의 상인들로 구성된

향수합창단의 수준 높은 공연이 이어졌다.

정지용 시인의 유명한 '향수'라는 음악을 합창으로 들려줍니다.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향수(鄕愁)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지용시인의 납북장면

 

제4막은 정지용 시인이 6.25전쟁때

보도연맹가입한 이유로 납북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정지용 시인은 북에 연행되는 마지막 장면에서

 "시는 사람들의 마음의 구원이다. 시는 공기와 같이

사람들의 마음을 천상에 세계로 이끄는 날개와 같다."고 말합니다

북한 김일성수령의 특별지령으로  활동하고 있는 애국지사들을 모두 잡아간다.
조선인민무력부에 들어 왔다. 그래서 결국 "정지용 시인"은 납북 작가가 되어서

약 35여년이란 세월동안 남한에서 잊혀진 시인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가 1988년 해금이 되면서부터 시인으로서는 가장 활발한 "기념사업"이 전개 되었다.

 

 

 

 

비록 납북작가라는 이유로 그의 시는 사라진 것처럼 했지만,
문단에 끼친 영향이나  선구자적 위치, 많은 작가들은 몰래 그의 시를 외우고 다녔다.

그래서  가장 빠른 시간내에 기념사업, 흉상, 등이  세워 졌고,
 추모의 마음이 계속 이어져 왔으며,  추모행사등이 활발하게 전개되게 되었다.

 

 

 

 

 

지용시인의 시 나비 시낭송

 

'나비'라는 시낭송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립니다.

 

 

 

이 시를 끝으로 지용은 한국전쟁과 함께

북으로 떠난 뒤 소식이 끊어졌습니다. 그의 시처럼...
"내가 이제 나비같이 죽겠기로..."

 

나비

 

"내가 이제 나븨같이 죽겠기로

 

나븨같이 날라왔다

검정비단

네 옷가에 앉았다가

창 훤 하니 날라간다."

 

 

 

 

 

향수극단 출연진들의 인사에서는  할머니들이 많은 박수를 받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