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산책로를 가을단풍과 함께 걸어봅니다 [서울 단풍명소/창덕궁후원]

2012. 11. 1. 11:52서울 어디까지 가봤니?/서울 여행지

 

 

 

 

 

왕의 산책로를 가을단풍과 함께 걸어봅니다 [서울 단풍명소/창덕궁후원]

 

 

 

창덕궁후원은 입장인원 제한으로 예약을 하는것이 편리하며

관람은 해설사와 동행하는 관람방식과 사진촬영을 위한

개별 자유관람을 같이 운영하고 있다 현재 창덕궁의 단풍은

조금씩 들기 시작했으며 11월 중순까지는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창덕궁 후원(昌德宮後苑) 또는 비원(祕苑)은 창덕궁 북쪽에

창경궁과 붙어 있는 한국 최대의 궁중 정원이다.

궁원(宮苑), 금원(禁苑), 북원(北苑), 후원(後園)으로도 불린다.

조선 시대 때 임금의 산책지로 설계된 후원(後園)으로

1405년(태종 5년) 10월에 별궁으로 지은 것인데,

이후 1592년(선조 24년)에 임진왜란 때에 불타 없어지고,

 1609년(광해군 1년)에 중수했다. 많은 전각(殿閣)과

누각과 정자가 신축, 보수되어 시대에 따른 특색을 보여 준다.

정원에는 왕실 도서관이었던 규장각과 더불어, 영화당(映花堂),

주합루(宙合樓), 서향각(書香閣), 영춘루(迎春樓), 소요정(逍遼亭),

태극정(太極亭), 연경당(演慶堂) 등 여러 정자와 연못들, 물이 흐르는

 옥류천(玉流川)이 있고, 녹화(綠化)된 잔디, 나무, 꽃들이 심어져 있다.

 또한 수백종의 나무들이 26,000그루 넘게 심어져 있고,

이 중 일부는 300년이 넘은 나무들도 있다. 창경궁을 합한

창덕궁의 총면적 약 0.674km2(20만 3769평) 중 창경궁은

약 0.177km2(5만 3600여 평)이고, 비원은 약 0.205km2(6만 1937평)이다.

창덕궁 후원은 1997년에 창덕궁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창덕궁 부용정 (昌德宮 芙蓉亭)

 

창덕궁에서 후원으로 가는 길은 현재는 내의원으로 불리는

 건물군을 왼쪽으로 끼고 담으로 좌우를 막은 통로를 이용하게 된다.

 이 통로는 약간 오르막길로 되어 있으며 길은 좌측으로 꺾이면서 내리막길로 변하는데

그 지점에서 부용지 일대의 모습이 내려다보인다. 3면이 경사지이며 경사가 모이는 한가운데에

 방형(方形)의 연못인 부용지가 있다. ‘부용(芙蓉)’은 ‘연꽃’을 뜻하는데,

창덕궁 후원의 대표적인 방지(方池)이다. 동서 길이가 34.5m,남북 길이가 29.4m에 이르는 방형의 연못이다.

부용지의 네모난 연못과 둥근 섬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사상을 반영한 것이다.

 연못은 장대석으로 쌓아올렸고, 남쪽 모서리에는 물고기 조각이 하나 있다. 잉어 한마리가

 물 위로 뛰어오르는 모습을 새겼는데, 이것은 왕과 신하의 관계를 물과 물고기에 빗댄 것이다.

이 연못의 남쪽 변에 부용정이 자리 잡고 있는데, 부용정의 남쪽은 낮은 언덕에 면하고 있다.

현판이 걸려 있는 동쪽이 건물의 정면인데, 이는 이곳의 지형이

남·북·서 삼면이 낮은 언덕으로 둘려있고, 동쪽만이 훤하게 트여 있기 때문이다.

 

 

 

 

 

 

 

건물주변을 보면 남쪽 언덕에는 3단의 화계(花階)를 설치하고 꽃을 심고 수석을 배치하여

 정원을 꾸며 놓았으며, 북쪽 연못에는 가운데에 섬 하나를 쌓고

그 뒤로 높은 언덕에 어수문(魚水門)과 주합루(宙合樓)일곽이 보이도록 하였다.

주합루의 왼쪽으로는 서향각(書香閣)이 있으며 주합루의 뒤 2단의 석대 위에

제월광풍관(霽月光風觀)이라는 편액의 작은 건물이 있다. 서향각의 뒤

높은 곳에 희우정이 있다. 연못의 서측에는 서정기비각(西井記碑閣)이 있다.

부용정은 궁궐지에 따르면 조선 숙종 33년(1707)에 이곳에 택수재(澤水齋)를 지었는데,

정조 때에 이를 고쳐 짓고 이름을 ‘부용정(芙蓉亭)’이라 바꾸었다고 한다.『동국여지비고』에는

 “주합루 남쪽 연못가에 있다. 연못 안에 채색하고 비단 돛을 단 배가 있어,

정조 임금께서 꽃을 감상하고 고기를 낚던 곳이다”라고 하여

이곳에서 왕이 과거에 급제한 이들에게 주연을 베풀고 축하해 주기도 했으며,

신하들과 어울려 꽃을 즐기고 시를 읊기도 하였는데, 1795년 수원 화성을 다녀온 정조가

 신하들과 낚시를 즐겼다고 전한다. 기둥에는 이곳의 풍광을 읊은 시를 적은 주련(柱聯)10개가 걸려 있다.

 

 

 

 

 

 

 

 

영화당(映花堂),

 

 

 

 

 

 

 

 

 

 

 

 

 

 

 

 

 

 

 

 

 

 

 

 

 

 

옥류천(玉流川)

 

후원 북쪽 깊은 골짜기에 흐르는 시내가 옥류천(玉流川)입니다.

1636년 거대한 바위인 소요암을 다듬어 그 위에 홈을 파서

휘도는 물길을 끌어들였고 작은 폭포로 떨어져 옥류천이 시작된다.

때로 흐르는 물 위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는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이

 이곳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바위에 새겨진 '玉流川' 세글자는

인조의 친필이고, 오언절구 시는 일대의 경치를 읊은 숙종의 작품이다.

소요정(遡搖亭),태극정(太極亭),농산정(籠山亭),취한정(翠寒亭)등

간략한 규모의 정자를 곳곳에 세워 매우 은밀한 정원을 이루었다.

작은 논을 끼고 있는 청의정(淸擬亭)은 볏짚으로 지붕을 덮은 궁궐내의 유일한 초가집이다.

 

 

 

 

 

 

 

창덕궁 소요정

 
소요정은 건물 자체로만 본다면 별다른 특징을 찾을 수 없는 작은 사모정이지만

 자리하고 있는 곳이 옥류천의 중심이라 할 어정과 곡수구와 폭포가 한 눈에 보이는 곳에 자리하여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제 역할을 하는 정자입니다. 

 

   정조 '소요정유상'(逍遙亭流觴) 시를 보면 ‘옥을 씻은 듯한 청류(淸流) 굽이굽이 긴데

난간에 가까운 산빛 신량(新凉)을 알았네 /  호량(濠梁)에는 전부터 관어(장자 고사) 즐거움 있나니 /

 난정 (蘭亭; 王義之가 유상곡수연을 하던 정자) 술잔에 대신 할만 하도다.’


  이 소요정은 왕 신하가 예대하지 않고 구곡(九曲) 물가에서 연우(燕友)와 친붕(親朋) 즐김을
  통해 현사(賢士)들 뜻을 살펴 제왕이 백성을 다스리는 수행을 하였던 것이다.

 

 

 

 

 

 

 

 

창덕궁 후원 옥류천 주변 정원 가장 안쪽에 있는 정자이다. 인조 14년(1636)에 세워졌다.
궁궐에서 유일하게 초가지붕을 이고 있다. 정면 1칸·측면 1칸 크기이며, 익공계 사모지붕을
얹고 난간을 둘렀으며, 단청으로 장식하였다. 임금은 정자 앞쪽에 논을 만들어 벼를 심고,
수확 후에는 볏집으로 정자 지붕 이엉을 잇게 하였다. 농사 소중함을 백성들에게

 일깨워 주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청 또 다른 옥류천 주변 정자인 소요정 사이에는

 어정()이 있으며, 어정에서 나오는 샘물은 옥류천으로 흘러든다.

 

어정 옥류천 사이에 얕은 사각형 연못을 만들고 세운 정자로 이 앞에는 벼를 심은

 논이 있어, 임금이 풍작을 기원하며 손수 벼를 베어 청 지붕을 엮었다고 한다

 

 

 

 

 

 

농산정 []

 

  창덕궁 후원 옥류천 바로 옆에 있는 정자들 중 하나로 인조 14년(1636)에 지었다. 임금이 옥류천으로
  거동했을 때 을 올렸던 장소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두벌장대 낮은 기단 위에 돌초석을 놓고,
  사각기둥을 세웠으며 납도리로 엮은 홑처마 맞배지붕을 올린 건물로, 행랑채처럼 소박하게 꾸며져 있다.

 창덕궁내 가장 오래된 정자인 농산정은 여타 정자와는 달리 특이하게 집같이 생겼다.

 이곳에서 정조가 어머니 생신연회를 베풀기도 하였으며 옥류천 멋을 즐겼다고 한다.

 

 

 

 

 

 

 

 

 

 

 

 

 

 

 

 

 

 

 

창덕궁(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2-71

02-762-8261

http://www.cdg.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