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2007. 7. 20. 22:02카톨릭 이야기/영성의 샘물

 

 

 

 

 

우리는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에서 발생한

총기사건에서 죽인 사람이나
죽어간 사람들 모두가 피해자임을 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어갔던 우리들의 실존의 처지를

이제 분명하게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필자는 그 깨달음의 시작을,

참극의 현장에 마련된 추모석들,
그 위에 놓여진 꽃과 편지들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감동이었다.
그 어떤 위대한 인물의 추모사보다도 웅장한,

인간에 대한 신뢰를 되찾는,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목소리였다.

 

그를 탓하기 전에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치지 않은

우리가 먼저 뉘우쳐야 한다는

이 학교 학생들,

앞으로 학교에서 말없는 외톨이를 만나면

입을 열 때까지 말을 걸어

친구로 만들겠다는 학생들.

 

참배객들은 32개의 추모석을 지나,

범인 앞에 머물며

다른 피해자들에게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고개를 숙여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면서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장엄한 광경이었다.

 

필자는 그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한 줄기 눈물과 함께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용서와 치유는 이미 시작됐고,

증오의 악순환의 고리는
범인의 추모석 위에 놓인

꽃과 편지로 단호히 끊어졌다.

 

  

 

 

 

예수님의 십자가상 희생제사가

하느님을 배신한 인간에 대한

용서와 치유를 완성하고,

죄와 죽음의 고리를 끊어 버렸듯이,

이들은 범인을 향한 따뜻한 눈길,

그리고 그가 처했던

절망의 상황에 대한 연민을 통해

인간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회복시켜주었다.

 

그것은 그들이 선진사회의

성숙한 시민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이신 하느님 모상을 따라 창조됐기에

이미 사랑을 알고 있는

존재로서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고인들을 추모하며,

다시 찾은 신뢰에 가슴이 벅차다.

 

 

 

 

박영호 기자 | <가톨릭신문> 2007년 4월 29일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