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 / 조명연신부

2008. 1. 31. 22:01카톨릭 이야기/영성의 샘물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사람의 잘못 여섯 가지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 남을 깎아내리면 자기가 올라간다고 착각함.

둘, 바꾸거나 고칠 수 없는 일로 걱정함.

셋, 어떤 일을, 자기가 이룰 수 없으니까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함.

넷, 대중의 편견을 생각 없이 따름.

다섯, 생각의 발전과 진보를 무시하여 독서하고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지 아니함.

여섯, 다른 사람에게 자신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강요함.

정말로 우리들은 이러한 잘못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나를 중심에 두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지요. 내가 중심에 있기에 그 무엇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며, 그래서 주님도 이 가운데 함께 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옛날, 바른 나라의 왕이 참된 나라 왕의 초대를 받아 놀라갔습니다. 참된 나라의 왕이 자기 나라 풍습에 따라서 다가와 뺨에 입을 맞추려 하자 바른 나라의 왕은 질겁했지요. 모르는 사람끼리 입술을 갖다 대는 것은 바른 나라에서는 불결한 행동으로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른 나라의 왕은 자신이 교육을 제대로 받은 신사중의 신사라는 사실을 증명할 생각으로 참된 나라 여왕에게 다가가 엉덩이를 슬슬 어루만졌습니다. 왜냐하면 이 행동이야말로 바른 나라에서는 “댁의 아내가 참으로 아름답고 건강하구려.”라는 칭찬이었거든요.

하지만 참된 나라의 왕은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노발대발했지요. 왕은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선전 포고를 했고, 바른 나라와 참된 나라의 전쟁으로 숱한 사람들이 죽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바로 다른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잘못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들도 이러한 잘못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주님이 아닌 내가 중심이 되어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등불의 비유 말씀을 해주십니다. 등불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두는 것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 말은 곧 무엇을 의미할까요? 당연한 진리를 쫓으라는 것입니다. ‘나’를 중심에 세움으로 인해서 진리에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중심에 세워서 진리를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무엇을 중심에 두고 있었는지요? 이제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잘못들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사람의 잘못 여섯 가지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