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

2012. 2. 4. 23:10카톨릭 이야기/영성의 샘물

 

 

 

 

 

 

 

 

 

 

 

 

 

 

 

 

 

 

 

새벽을 열며

- 조명연신부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눈은 달라도 어딘가 다른 것 같습니다. 똑같은 장소를 보고 똑같은 사진기로 그 장소를 찍지만, 제가 찍은 사진과 사진작가들이 찍은 사진은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바로 어떤 각도로 또한 어느 정도의 거리에서 바라봤을 때 가장 아름다운지를 사진작가들은 아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앎이 하루아침에 얻을 수 있는 것일까요? 물론 천재적으로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하더군요.

“사랑을 갖고 계속 사진을 찍다보니 어느 순간에 어떤 각도와 거리에서 아름다운지를 알게 되더군요.”

사진 찍는 것을 사랑했을 때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는 것이지요. 어쩌면 우리들의 삶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만남도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랑을 가지고서 바라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지요.

마리아 막달레나는 베드로와 다른 제자 요한에게 무덤에서 본 일을 보고하고 두 제자를 따라 무덤에 다시 왔습니다. 두 제자는 빈 무덤을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마리아는 그대로 무덤에 남아 있었지요. 마리아는 무덤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 서서 울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셨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운데 무덤 안을 기웃거리며 들여다보게 되었지요. 그런데 어둠 속에서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에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먼저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하고 묻자, 마리아는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라고 묻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는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오로지 주님의 시체에만 생각이 쏠려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정신이 없는 순간, “마리아야!”라는 평소에 부르시던 사랑스러운 호칭을 듣게 됩니다. 이에 곧바로 주님을 알아 뵙고는 “라뿌니!”라고 답변을 하지요. 바로 예수님께 대한 사랑이 없다면 할 수 없는 행동이지요.

주님의 부르심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지만, 세상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으면 그 소리가 세상의 소리에 묻혀서 들리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마리아처럼 주님께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면 곧바로 주님께 응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나는 과연 어떤 목소리를 듣고 있을까요? 세상의 목소리입니까? 아니면 주님의 목소리입니까? 사랑의 마음을 계속해서 간직하려고 할 때,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힘차게 이 세상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의 마음을 갖고 사진을 찍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