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 정동길 [덕수궁 돌담길]

2010. 4. 7. 23:14서울 어디까지 가봤니?/서울 걷기 좋은길

중구 정동길 [덕수궁 돌담길]

 

 

 

 

 

 

 

 

 

 

 

 

 

 

 

 

 

 

 

 

 

 

 

 

 

 

 

 

 

 

 

 

 

 

 

 

 

 

 

 

 

 

 

 

 

 

 

 

 

 

 

 

 

 

 

 

 

 

 

 

 

 

 

 

 

 

 

 

 

 

                                권기호

 

 

<Ⅰ>

젊은 한때
서투른  열기로
사랑이란 말을 써본 일이 있다

그녀 앞에서
그것은 후두에 걸려 오래 허둥대다가
뱉어진
겨우 식은 납덩이같은 것이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피가 돌지 않는 언어를 들고
나는 발 뿌리에 멍이 들도록
산을 헤매었다

그때부터였던가
논리나 형이상학은
유리 구체로 된 세계 위에
지식인들이 하염없이 쌓고 있는
바빌론의 돌무덤이라 생각되었다

인류애나 정의는
정치인들이
자판기에 찍어내는 비석위에 새겨 놓은
공허한 의문부호라 생각되었다

말하지 않지만
밤하늘의 은하는
가슴의 뜻을
지상의 꽃으로 뿌릴 줄 안다

말하지 않아도 나무는
지구 중심의 열기를
여름 하늘 구름으로 올려 놓을 줄 안다

    <Ⅱ>

없는 형상을
형상의 옷으로 드러내야 하는
슬픈 본질이 시인에게는 있다

이 슬픔은 때로 광기로 윤색된다

반 고호의 하늘이나
명왕성 저쪽으로 사라지는
쟈코메티의 군상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광기 역시
찻잔 속 우레에 지나지 않는다

에른스트 핏셔는 베토벤 작품 131번을
근대 자본주의 매연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비평가는 그것이
계급적인 것이 아니라 삶의 관조에서 오는
예지라는 것이다

형상의 덮개 위에
색깔을 덧칠하는
이런 작업 때문에
시인은 더욱 슬퍼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