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 13. 00:02ㆍ전국 문화재와 박물관/국가지정 문화재
서울 종로구 와룡동 2-1 에 위치한 창경궁(昌慶宮) 은 사적 제123호로
조선시대 궁궐로 태종이 거처하던 수강궁터에 지어진 건물이다
성종 14년(1483)에 정희왕후, 소혜왕후, 안순왕후를 위해 창경궁을 지었다.
처음 지을 당시의 건물은 명정전·문정전의 정전과 수령전·환경전·경춘전·인양전·통명전 등의 침전 및
양화당·여휘당·사성각이 있었다. 조선시대의 궁궐중에서는 유일하게 동쪽을 향해 지어졌다.
처음에는 별로 사용되지 않다가 임진왜란 때에 경복궁·창덕궁과 함께 불에 탄 이후,
창덕궁과 같이 다시 지어져 조선왕조 역사의 중심 무대가 되었다.
숙종의 사랑을 받던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독살하려는 못된 행동을 저지르다가 처형을 당했는데,
당시 희빈은 주로 취선당에서 생활하였다. 또한 영조는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일을 저질렀는데,
세자가 갇힌 뒤주를 궁궐 안의 선인문 안뜰에 8일간이나 두었었다.
창경궁은 순종이 즉위한 후부터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09년 궁궐 안의 건물들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였으며, 궁의 이름을 창경원으로 낮추기도 하였다. 그
러다가 1984년 궁궐 복원사업이 시작되어 원래의 이름인 창경궁을 되찾게 되었고,
궐 안의 동물들을 서울대공원으로 옮기면서 벚나무 역시 없애버렸다.
장조·정조·순조·헌종을 비롯한 많은 왕들이 태어난 궁으로,
광해군 때 다시 지어진 정문·정전들이 보존되어 있으며, 옆에 있는 창덕궁과 함께
조선시대 궁궐의 역사를 살피는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유적이다
명정전은 조선 성종 15년(1484)에 창경궁이 조성되고, 그 정전으로서 명정전이 세워졌다.
이곳은 임금님이 신하들의 조하(朝賀)를 받거나 국가적인
행사가 거행되었던 곳으로 1544년 인종이 이곳에서 즉위하였다.
명정전은 경복궁이나 창덕궁의 정전과는 달리 남향이 아닌 동향이다.
이는 창경궁의 지세에 따른 것이다. 그후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8년(1616)에 복원되어 오늘에 이른다. 다른 궁의 정전과 같이 이중의 월대를 두어
그 위에 건물 기단을 마련하고, 큰 사각 주초 위에
원형의 운두 높은 주좌(柱座)를 조각하여 초석을 배열하였다.
월대의 형식은 다른 궁의 것과 달리 지형에 맞추어 전면 동쪽과 북쪽 일부만을 이중단으로 하고,
건물 좌우와 뒷편에서는 1단으로 하였다. 평면으로 보아 정면 5칸,
측면 3칸에 후퇴(後退)를 한 단층 팔작기와지붕으로 겹처마이다.
평주 위에는 모서리를 많이 굴린 창방이 놓이고 운두가 낮은 평방 위에 다포계 양식의 외삼출목,
내사출목의 공포를 짜았다. 건물 사면은 모두 꽃살창으로 돌려져 있는데, 그 위로는 교살창이 있다
. 내부 바닥에는 전(塼)을 깔았고, 뒤편 중앙부에는 왕좌인 용상이 있는데 그 뒤로 일월도의 병풍이 놓였다.
그 위로는 닫집으로 짜은 보개(寶蓋)가 있고 천정의 중앙부에는 한층을 접어올린
쌍봉문(雙鳳紋)이 있는 보개천정을 장식했으며, 그 주위는 우물반자를 하였다.
단청은 모로단청을 하고, 특히 천정판에는 화려한 연화문의 반자초 단청(丹靑)을 시문했다.
월대의 전면에는 명정전 어간에 맞추어 중앙에 삼도의 이중계단이 놓였다.
가운데 어계의 폭은 2.4미터이고, 양측 협계(挾階)의 폭은 각 1.3미터이다.
상하 계단은 모두 6단씩으로, 어간의 답도(踏道) 석판 중앙에 사분심엽형(四分心葉形) 윤
곽을 양각(陽刻)한 후 그 안에 날개를 활짝 편 한쌍의 봉황을 조각해 장식했고,
챌판에도 당초(唐草)와 보상화(寶相華), 운문(雲紋) 등을 정교하게 조각하였다.
하층 계단 앞에는 명정문과 연결되는 어도가 있고 좌우에 24개의 품계석(品階石)이 있다.
'전국 문화재와 박물관 > 국가지정 문화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적 제123호 창경궁(昌慶宮)~경춘전과 환경전 (0) | 2011.03.18 |
---|---|
사적 제123호 창경궁(昌慶宮)~ 숭문당과 함인정 (0) | 2011.03.14 |
사적 제123호 창경궁(昌慶宮)~ 홍화문과 외행각 (0) | 2011.03.11 |
독립과 민주의 현장, 사적 제 324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5 (0) | 2011.03.04 |
독립과 민주의 현장, 사적 제 324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3 (0) | 2011.03.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