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골목투어, 이상화고택~서상돈고택~진골목 [공감블로그]

2011. 5. 7. 08:19전국 방방곡곡 여행지/경상도 여행지

 

[대구 골목투어] 이상화고택~서상돈고택~진골목

 

 

대구여행의 단연 으뜸인 대구골목투어를 시작합니다.

 한국전쟁(5,25)를 겪지않은 대구의 골목길은

근대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6,25전쟁때 피난온 문인과 예술가들의 일화가 골목에 배어 있습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 시인이 걸어나오고

대구땅에 제일먼저 사과를 심었던 선교사들도 보인다.

음악다방 한쪽에는 화가 이중섭과 피난온 소설가 김원일이 앉아있다.

 

대구골목투어 문의~ 중구청 문화관광과(053-661-2194)

홈페이지(http://gu.jun g.daegu.kr)

 

 

 

 

 

 

계산동 2가 84번지에 위치한 고택은 항일문학가로 잘 알려진

이상화 시인이 1939년부터 작고하던 1943년까지 거하던 곳이다.

2001년 오래된 고택이 도로로 변할 위기에 처하자

고택보존을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이 일어났다.

대구 시민의 힘으로 이상화 시인의 고택은

빼앗긴 들의 봄을 염원했던 모습 그대로 복원됐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상화(李相和)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도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셈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이상화 시인의 고택 바로 옆에대구 출신으로 민족자산가이자

국채보상운동 주창자인 서상돈 선생 고택이 있습니다.

 

 

 

 

 

 

 

 

 

 

 

 

 

 

 

 

 

 

 

 

 

 

 

 

 

 

 

 

‘약전골목’입니다. 대구는 ‘약령시’로 불릴 만큼 큰 한약재시장이 열리던 곳이다.

 조선 효종6년(1658)부터 대구 읍성 객사 부근에서 봄가을 두 차례에 걸쳐 한약재를 거래했다.

 지금도 골목에 깃든 한약냄새 덕분에 걷기만 해도 병이 낫는다는 속설이 있다.

 

 

 

 

 

 

 

 

 

약령골목의 한쪽에는 지금은 약재창고가 돼버린 ‘마당 깊은 집’이 있다.

소설가 김원일이 피란와서 살았던 집으로 훗날 소설 ‘마당 깊은 집’의 무대가 된 곳이다.

지금은 담벽에 그려진 몇 장의 벽화가 소설에 등장하는 옛 골목의 풍경을 보여준다.

 

 

 

 

 

 

 

 

 

 

진골목 초입에 떡골목입니다.

화려하고 예쁜색의 떡과 이바지 음식을 만들어 팝니다.

 

 

 

 

 

 

 

 

 

 

간판에 화상이라고 씌어진 중국인 운영하는 중화요리집입니다.

 

 

 

 

 

 

 

 

 

 

대구에서 ‘진짜 골목’이라면 진골목을 꼽을 수 있다.

 진골목이란 이름은 ‘긴 골목’을 뜻하는 경상도사투리다.

이 골목은 내로라하던 대구의 부호들이 모여 살던 부촌 중의 부촌이었다

지금은 대부분 식당이 되어있고 문을 닫은 정소아과만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또 이골목에는 유신때 학생들이 술잔을 앞에놓고 유신을 통곡(哭)하고,

정권을 저주(呪)했다고 해서 ‘곡주사’란 이름이 달린 술집도 남아있다.

꼴목끝에 미도다방도 유명한 곳으로 정치인과 공직자들이 드나들었던 곳으로

지금도 그때의 마담이 한복을 곱게 입고 커피와 약차를 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