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0. 2. 17:37ㆍ전국 문화재와 박물관/국가지정 문화재
대한의원 (사적 제248호)
사적 제248호인 대한의원 (大韓醫院)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내에 있는 대한제국시대의 대한의원 건물이다.
1907년 대한제국 정부가 임금의 명령에 의해 의정부 직속으로
창경궁의 바깥 정원인 함춘원의 언덕에 지었다.
일본인 기술자의 설계로 1907년 건물을 짓기 시작하여
1908년에 완성하였다. 처음에는 병동과 부검실,
의학교가 지어졌으나 현재는 본관건물만 남아 있다.
1908년 대한의원은 조선총독부의원으로 바뀌었고,
1911년에는 부속 의학강습소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1926년에는 경성제국 대학에 포함되면서 대학병원으로 되었다.
광복 뒤에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병원의 본관이 되었고,
1970년대말 새 건물이 세워진 뒤에 부속건물이 되었고,
현재는 서울대학교병원 의학박물관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의 구조는 지상 2층으로 현관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형으로 되어 있으며, 자동차로 직접 현관까지 들어갈 수 있도록
현관에 차 대는 곳을 만들어 정면 입구를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본관의 지붕은 앞면에서 봤을 때 사다리꼴 모양을 한 우진각 지붕이며,
중앙에 높이 솟은 시계탑은 바로크양식을 하고 있어
본격적인 서양식 건축물의 특징을 찾을 수 있다.글출처~문화재청
송촌(松村)·지석영(池錫永)동상
지석영(池錫永, 1855년 5월 15일 서울~1935년 2월 1일)은
조선 말기의 의사이며 문신, 한글 학자이다.
종두법의 하나인 우두법의 보급에 공헌하였다.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공윤(公胤), 호는 송촌(松村)·태원(太原)이다.
흔히 한국 최초의 우두법 시술자로 알려져 있다.
종두법 시행의 선구자로, 종두에 대한
알기 쉬운 서적을 저술하여 의학 발전에 기여하였고,
천연두가 유행할 때마다 우두 종법을
실시하여 병에 걸린 이들을 구제하였다.
또한, 한글 보급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1910년에는 고종으로부터 팔괘장과 태극장을 받았다.
1905년∼1977년. 의학자. 호는 일성(一醒). 서울 출신.
1923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30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약리학(藥理學)을 연구하다가, 1934년 신경정신과학교실로 옮겨
신경정신의학을 4년간 연구하였으며, 1937년 병원을 개설하여 환자진료에 전념하였다.
1945년 조국광복과 더불어 경성대학 의학부의 신경정신과학교실
초대주임교수 겸 경성대학 의학부 부속병원 초대원장에 취임하였고,
1946년 10월 경성대학이 국립서울대학교로 개편된 후에도 1947년 3월 사임할 때까지 같은 직책을 맡았다.
6·25동란중에는 육군군의관으로 복무하였으며, 1956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복귀,
같은해 9월 의과대학 학장에 피임되어 전란으로 황폐화된 의과대학의 재건에 중추적 소임을 다하였다.
1959년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초대원장을 겸하여 보건학발전에 기여하였다.
1962년 서울대학교 교수직 사임 후에는 1964년 서울시의사회 회장을 거쳐
1966년 대한의학협회 회장에 피선되어 18·19대 회장을 역임하였고,
1970년에는 조선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장으로서 4년간 봉직한 바도 있다.
어릴 때부터 수리에 밝았으나 노년에는 한글에 대한 연구도 한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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