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0. 21. 18:00ㆍ카톨릭 이야기/천주교 성지순례
미리내 교우촌의 유래
미리내 성지의 ’미리내’는 은하수(銀河水)의 순수 우리말로서 시궁산(時宮山 515m,
神仙峰으로도 전해짐)과 쌍령산 중심부의 깊은 골에 자리하고 있다.
골짜기 따라 흐르는 실개천 주위에, 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와 점점이 흩어져 살던
천주 교우들의 집에서 흘러나온 호롱불빛과 밤하늘의 별빛이 맑은 시냇물과 어우러져
보석처럼 비추이고, 그것이 마치 밤하늘 별들이 성군(星群)을 이룬
은하수(우리말 ‘미리내’)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아름다운 우리의 옛 지명이다.
1883년에 <순교자 79위 시복 조사>를 담당하고 있던 서울교구의 뮈텔(Mutel, 閔德孝) 신부가 이곳을 방문하고 미리내 공소를 설립하였는데, 당시의 교우촌 신자 수는 모두 82명이었다. 김대건 신부가 미리내에 묻힌 지 50년 후인 1896년 5월, 강도영(姜道永) 신부의 부임으로 미리내에 본당이 설정됐을 때에, 이곳에는 이미 182명의 신자들이 한 교우촌을 이루고 있었고, 1906년 <미리내 요셉성당> 축성 때에는 교우 수가 1,600명을 넘었으며, 1922년에는 본당관할 12개 공소의 공소 신자가 1,453명에 이르렀다.
원삼면의 고추골, 용바위, 모래실. 내사면의 은이, 골배마실, 수여면의 별미. 미동면의 먹뱅이, 한터울, 안터, 사리틔, 쇠재. 남사면의 사미로니 등 12곳 공소들로서, 미리내 인근 30리 이내의 이들 교우촌들이, 옛 선조들의 신앙을 지키며 꿋꿋이 믿음살이를 이어가고 있었다.
김대건 신부 묘역 위 미리내 고개(오두재, 일명 애덕고개)를 넘어서면, 거문정이, 굴암골, 한덕골, 먹뱅이, 은이, 골배마실 골짜기에 이르는데, <용담 저수지> 옆 ‘묵리 먹뱅이’가 미리내 성지에서 5.5Km거리이고, 한덕골(광파리골)이 4Km, 거문정이, 굴암골이 2Km 이내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미리내에서 오두재(애덕고개) 해실이(망덕고개) 어은이고개(신덕고개)를 넘어가면 은이공소(미리내 성지에서 9Km)에 이른다. 은이공소와 골배마실은 작은 산을 사이에 두고 넘나들던 지척 간(1.5Km)이다.
1906년 축성한 성요셉성당
미리내는 경기도 광주, 양평(양근), 용인, 안성, 화성, 시흥 일대와, 충청도 천안 목천, 진천 배티, 동골 등, 교회 초기에 우리의 신앙선조들이 교우촌을 이루었던 곳 중에서, 중부내륙 용인과 안성에 깊숙이 위치한 초기 비밀교회인 미리내, 한덕골, 골배마실, 굴암, 검은정이 중 한 곳이었다.
미리내와 인근의 이십리 안에 있는 한덕골, 골배마실, 검은정이 등의 교우촌들은 본래 신유박해(1801년) 이후에 크고 작은 박해를 거치면서, 주로 경기도와 충청도 지방의 신자들이 산속을 찾아들어와 미리내 인근 산골짜기로 옮겨 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고, 훗날 미리내는 공소와 본당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신자들은 이곳 골짜기 마다 작은 마을들을 이루며 주로 척박한 밭을 일구고 그릇을 구워 팔아 생계를 유지하며 살았다.
이들은 아침저녁으로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을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생각하였다.
이것이 바로 초대 교회로부터 내려오는 나눔과 섬김의 전통이었다.
성요셉성당 내부
옛 해성학원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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