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여행 <로드스토리(RoadStory)>자갈치시장(충무동 해안시장과 새벽시장)->공동어시장->남부민동 포구

2011. 11. 8. 06:30전국 방방곡곡 여행지/부산 여행지

 

부산여행 <로드스토리(RoadStory)>

자갈치시장(충무동 해안시장과 새벽시장)->공동어시장->남부민동 포구

 

<로드스토리(RoadStory)>

1.부산남항해안길

코스 : 자갈치시장(충무동 해안시장과 새벽시장)->공동어시장->남부민동 포구

자갈치시장과 영도대교, 남향대교가 둥그렇게 둘러싼 부산 남항은 바로 임진왜란 당시 부산포 해전이 벌어진 역사적 장소다. '임진왜란 당시 승전지가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 거주지역으로' 바뀌었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해전에서 승리를 거듭한 전라좌수자 이순신은 특히 한산도와 안골포해전을 통해 제해권을 장악했다. 이순신은 일본군의 근거지인 부산을 공격해서 일본군의 본국과의 연락을 두절시키기기 위해 8월24일 부산포로 향했다.

 '부산포해전'은 1592년 9월 1일, 부산포와 절영도 앞바다에서 정박한 일본군 함대를 기습하여 대파한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녹도만호 정운이 전사하였고, 일본군은 100여척의 함선을 잃었다. 부산포해전의 승리로서 조선군은 남해상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고, 조선에 침략한 일본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평야에 주둔한 고니시 유키나가가 그대로 평야에 주저앉아 있다가 조명연합군에 밀린 것도 이순신에 의해 해상보급로를 차단당한 때문. 또 호남 역시 일본군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할 수가 있었다.

 

 

 

 

 

 

자갈치시장뒤 친수공원

 

 

 

 

 

 '부산항'은 두 개의 구역으로 나뉜다. 남항과 북항이 그것으로 부산대교를 중심으로 북항은 일반 화물·잡화류의 하역 및 일반 해운을 취급하는 컨테이너부드이고 남항은 어항이다. 남항은 1975년 부산항에서 분리, 2종항으로 지정된 항만으로 부산 어물시장이 부두에 인접한다. 원양어업기지로서의 모항 구실도마ㅕ, 어항기능만을 전담하여, 한국 제일의 어항이며, 수산없의 총본산 구실을 하고있다.
 겐추리크레이(Gantry Crane·레일이동식 대형크레인)이 위압적으로 서 있는 북항이 현대식 부두의 모습이라면 그저 고만고만한 어선들의 마스트(돛을 세우는 기둥)가 어지럽게 수직 구도를 이루고 있는 충무동 남항 부두는 천수공간이면서도 인간적이다. 자갈치시장을 위시한 남항 일대는 부산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수산과 항만이 자리잡고 있고 서민들의 삶이 곳곳에 배여 있다.

 

 

 

 

 

 1876년에 개항한 부산항은 수출 한국을 이끈 시발점 이자 관문으로 근대화와 산업화의 상징이다. 1965년 10월 16일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부산항 3부두에서 치러졌던 맹호부대의 월남전 파병은 한국 근대사에서 부산항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현재 북항은 제 1~8부두, 중앙부두, 연안·국제여객부두, 자성대 신선대, 감만, 신감만, 우암컨테이너터미널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1~4부두와 중앙부두, 연안·국제여객부두는 북항 재개발사업으로 인해 폐쇄될 예정이다.
 부산포 개항 600년은 곧 조선의 역사이기도 했다. 1407년 조선은 일본·중국 무역항으로 부산포(자성대)를 열었다. 일본의 임진왜란과 태평양전쟁 관문 역시 부산포였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유엔군도 일제가 만든 북항을 통해 군수품을 조달했다. 개항과 비슷한 시기에 일본인 거류지인 왜관도 설치됐다. 부산포왜관(좌천동·1407~1592)->두모포왜관(수정동·1607~1678)->초량왜관(용두산공원·1678~1876)은 무역의 중심지 특히 '3부두'는 1965년 11월 16일 우리 국군의'베트남 전쟁 출항지' 였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가난에서 탈출하기 위해 비극의 땅으로 떠났따. 그들의 '피 묻은 달러'는 고속도로와 철도를 놓고, 초가지붕을 슬레이트로 바꾸고, 중공업을 일으키고, 우리들의 배고픔을 채워주는, 이른바 '조국근대화'의 밑거름 이었다.

 

 

 

 

 영도를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낸 단어는 영도다리다. 영도의 도개교 등장은 다리도 다리 이지만 섬을 연결하는 다리의 탄생이라는 점에서 뚜렷하게 각이된다. 영도다리는 그렇기에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희소성과 일본에 의해 개항된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개황의 시발이라는 이미지가 부각된 것이다.
 영도대교(원래의 이름은 영도도진교)는 일제강점기피란민들의 밀향의 슬픔을 달래주었던 역사적 교량이다. 길이 214.7m, 폭 18.3mㄹ, 교량 면적은 3,948㎡, 도개 면적은 1,044㎡이며 도개 속도는 1분30초~4분으로 도개 동력은 22마력이다. 총길이 214.7m 중 도개부분은 중구 측 31.3m 부분으로 1천톤급 기선이 운항이 가능하다록 건설되었으며, 그 외 부분은 캔틸레버식 강판으로 건설되었다.
 영도대교는 하루 총 6회씩 도개하여 부산의 명물로 자리하였지만 1966년 9월 증가하는 차량통행으로인해 도개기능이 멈추었다. 개통 당시 부산대교였던 다리 이름도 부산개항 100주년을 맞이하여 착공한 부산대교가 준공되었던 1980년 2월에 영도대교로 개명되었고 시지정문화재 제56호로지정된 바 있다.
일제 강점기에 만든 개폐식 다리는 두 개인데 '압록강철교'는 좌우로 열리는 형태고 영도다리는 위 아래로 들었다 놓았다 하는 형태였다. 따라서 영도다리는 한 쪽만 들리는 우리나라에서 하나뿐인 '단엽식도개교'로 희소가치가 크다.
 현재 영도대교는 상판이 제거된 채 8개의 교각만 덩그러니 남았고 교각 위에서는 인부들이 해체작업을 벌이고 있다. 부산의 애달팠던 근현대사를 오롯이 간직했던 옛 영도대교가 사라진 자리에 새 영도대교가 건설 중인 것이다. 내년 연말까지 교각 해체가 마무리되고 새교각이 들어서면 본격적인 상부공사가 진행되고 오는 2013년 7월 새 못브을 선보이게 된다. 그러나 새다리는 도개 기능을 갖추지만 옛날처럼 다리르 매일 들어 올리지는 않는다. 부산시는 영도다리축제처럼 특별한 날 '번쩍' 들어 올릴 계획이다.

 

 

 

 

 

옛날부터 부산시내 음식점이건 여염집에서건 집집마다 오르는 찬거리 가운데서 해산물이라면 당연히 자갈치시자에서 공급하고 있는 것이라 할만큼 부산의 맛을 공급하는 곳이 바로 이 자갈치 시장이다.
 한마디로 자갈치시장이라고 하지만 자리마다 때마다 나도는 생선이 다르고 값도 달라지는 곳이 자갈치시장이다. ;부산어패류(釜山漁貝類)처리장'이라는 3층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고 있는가 하면, 널판지 하나를 되는 대로의 받침에 덜렁  얹어 놓고 전을 벌이고 잇는 노점상 까지도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이런 자갈치 시장에는 아침저녁으로 장바구니를 끼고 찾아드는 알뜰 아낙네들로 발 디딜 틈도 없이 붐빈다.

 

 

 

 

자갈치시장은 원래 충무동쪽 보수천 하구 일대가 자갈투성이였던 자리에 시장이 섯따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였다. 그러나 오늘날 '자갈치시장'으로 들먹여지고 잇는 곳은 '자갈치어패류처리장'이 들어서 있는 남포동을 중심으로 하는 갯가 시장이다. 우너래 이 자리에는 '자갈치어패류처리장'이 가건물로 들어서 있었던 곳이다.
`윤용하의<보리밭>노래비
 가곡'보리밭'의 작곡가 윤용하 역시 평생을 피란지 부산에서 부평초처럼 떠돌다가 삶을 마감했는데, 피란의 와중에도 국민가곡 <보리밭>을 작곡하는 예술혼을 불태웠다. 국민가수 김정구도 휴전 후 오랫동안 아미동 쪽방집에서 칩거하며 힘겨운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보리밭' 노래비는 자갈치시장 수변공원 안에 위치해있다.

 

 

 

 

 

 

 

 

 

 

 

 

 

 

 

 

 

 

 

 

 

 

 

 

 

 

 부산 남항에는 배들이 가득하다. 어선, 우반선, 급유선, 여객선 등등 종류도 가지가지. 이들 가운데 유난히 작은 배들이 바로 '통선(通船)'이다. 쉽게 말해 바다의 택시인 셈이다. 자갈치공판장에서 공동어시장 쪽으로 3분남짓 걷다보녀 북개천 부근 부두에서 통선들을 볼 수 있다. 요금은 1천 원. 통선은 작은 것은 2t, 큰 것은 5t정도 된다. 복개천 부근에는 통선이 많을 때는 30척이 됐지만 지금은 9척으로 줄었다.

'부산공동어시장'은 우리나라 연근해 어업 생산량의 20% 정도를 위판한다. 50%를 넘기던 초창기에 비해선 못하지만 여전히 전국 최대 수산물 위판장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부산 공동어 시장의 간판 어종은 '고등어'다. 국내 고등어 생산량의 80% 이상이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위판된다. 또 공동어시장에서 위판되는 전체 수산물 중 고등어가 차지하는 비율도 절반 가까이 된다.
 부산공동어시장의 모태는 지난 1963년 현재의 국제여객터미널 부두 자리에 설립된 '부산종합어시장'이다. 이후 1971년 '부산공동어시장'으로 이름을 변경한 후 1973년 현재의 부산 남항으로 이전했다.

 

 

 

 

 

 

 

 

 

 

 

 

 

 

 

남항 방파제는 홍색과 흰색 방파제가 있는데 주로 찾는 곳은 홍색 방파제이다. 낮에는 충무동이 한눈에 들어올 뿐 아니라 밤에는 파란색으로 자체 발광하는 등대와 뒤로 보이는 남항대교의 야경이 장관을 이룬다.

2008년에 개통이 되어 서구와 영도구를 이어온 '남향대교'. 남향대교에는 군내에서는 드물게 다리위에 편도 1.25km인 산책로가 설치됐다. 이 산책로는 부산의 명물로 자리를 잡았다. 발 아래 연안 여객선과 조업 나가는 통발어선들을 내려다보며 거듣는 남항대교는 사람의 채취가 진하게 묻어있다. 자가치ㅅ장, 용두산공워느 영도다리, 국제시장 그리고 남항 항내에 빼곡한 오징어잡이 선박과 영도 남항 수리조선소의 녹슨 선박들을 보며 걸을 수 있는 다리, 남항대교가 아니면 흉내내지 못하는 멋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