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문화재탐방] 정동교회(貞洞敎會) 사적 제256호

2012. 1. 16. 14:00전국 문화재와 박물관/국가지정 문화재

[서울 문화재탐방] 정동교회(貞洞敎會) 사적  제256호

 

고종 광무 2년(1898)에 준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개신교 교회건물이다.
본래는 십자형으로 115평이었으나 1926년 증축 때

양쪽 날개부분을 넓혀서 현재는 175평의 네모난 모양을 이루고 있다.

 원래 건물은 그대로 두고 양 날개 부분만 늘려지었기 때문에

 건물의 원래모습에는 손상이 없다.벽돌쌓기를 하였으며,

곳곳에 아치형의 창문을 내어 고딕양식의 단순화된 교회당 모습을 이루고 있다

. 돌을 다듬어 반듯하게 쌓은 기단은 조선시대 목조 건축의 솜씨가 배어있어 주목된다.
이 교회당의 종은 장식없는 내부 기둥들의 겉모습과 함께 소박한 분위기를 지니기 있다.

 소박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 북미계통의 단순화된 교회건물이다.글출처~문화재청

 

 

 

 

 

 

 

 

 

탁사(濯斯)최병헌목사

1858(철종 9)∼1927. 감리교 목사로 호는 탁사(濯斯). 충청북도 제천 출신.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고 과거를 준비하던 중 『영환지략(瀛環志略)』 등의 서적을 읽고 서양문화의 발달상과 그 정신적 지주가 기독교임을 알게 되었다.과거의 부패상에 분노를 느끼고 사회개혁운동에 관심을 두던 중 1888년(고종 25) 선교사 존스(Jones ,G. H.)에게 우리말을 가르치고 배재학당의 한문교사가 되면서 선교사들과의 교제를 가졌다.1893년 세례를 받고 정동교회의 전도사로 활동하는 한편, 성서번역위원 및 독립협회 간부, 제국신문 주필, 신학월보 편집인 등으로 활약하였다.또한 『독립신문』ㆍ『조션그리스도인회보』ㆍ『대한매일신보』ㆍ『황성신문』 등에 개화사상 및 정치개혁사상을 역설하는 문필가로서 활동하였다.1902년 목사 안수를 받고 교회를 담임할 수 있고 등단설교(登壇說敎)를 할 수 있는 최초의 목사가 되었다. 정동교회의 창설자인 아펜젤러(Appenzeller, H. G.)가 해난사고로 사망하자 곧 담임목사직을 이어받아, 1903년부터 1914년까지 목회활동을 하였다.

 

 

 

 

 

 

 

아펜젤러 목사1858∼1902
아펜젤러 목사는 1885년 국내에 들어온 첫 감리교 선교사로미국 북장로교회 선교사인 언더우드와 함께 미국 북감리교회에서 한국에 파송한 안수받은 최초의 선교사로서 1885년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한국 감리 교회를 창설하고, 배재 학당을 설립했다. 1887년 9월 서울에 벧엘예배당(지금의 정동제일교회)을 설립, 전도활동을 벌였다.1887년에 한국 성경 번역부가 생기자 언더우드, 게일 등과 함께 성경 번역 사업에 참여하여 ‘마태 복음, 마가 복음, 고린도 전서, 고린도 후서’를 맡아 번역하였다. 1895년에는 월간 잡지 <한국 휘보>를 다시 펴내면서 편집을 맡았다. 그는 외우기 위주의 전통적인 한국식 교육 방법을 이해 중심의 교육 방법으로 고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1902년에 목포에서 열리는 성경 번역자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배를 타고 가던 도중 목포 앞 바다에서 배의 충돌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정동교회(貞洞敎會) 사적  제256호

서울 중구 정동 34

02-753-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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