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재탐방] 배제학당 동관(培材學堂 東館) 서울시 기념물 제16호

2012. 1. 16. 06:30전국 문화재와 박물관/국가지정 문화재

[서울문화재탐방] 배제학당 동관(培材學堂 東館) 서울시 기념물 제16호

 

 

옛 배재학당의 교실로 사용되었던 건물로서,

앞쪽의 현관과 양옆 출입구의 돌구조 현관이 잘 보존되어 있다. 

또한 건물의 구조와 모습, 건물에 사용된 벽돌 구조가 매우 우수하다.  

 1916년에 건립된 이 건물은 처음 지어질 때의 모습을 잃지 않고 있으며,

 건물의 형태도 매우 우수하여 한국근대건축의 중요한 지표가 된다.

현재 배제학당역사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잇다.

 

 

 

 

 

배제학당은 1885년(고종 12) 서울에 설립되었던 중등과정의 사립학교로

미국의 북감리회(北監理會) 선교부 선교사 아펜젤러(Appenzeller,H.G.)가

세운 우리 나라 최초로 외국인이 설립한 근대적 사학(私學)이다.

아펜젤러는 1885년 6월 21일 인천에 두번째 입국하여 7월 19일 서울에 들어와서

 1개월 먼저 와 있던 의사 스크랜튼(Scranton,W.B)의 집 한 채를 산 다음

방 두 칸 벽을 헐어 작은 교실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이 해 8월 3일에

 이겸라(李謙羅)·고영필(高永弼)이라는 두 학생을 얻어 수업을 시작하였다.

이때 폴크 공사(公使)는 고종(高宗)에게 아펜젤러에 관하여 아뢰었고,

동시에 그가 영어학교를 설립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하였다.

그 당시 고종은 아펜젤러가 열심히 두 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또 앞으로 여러 학생을 교육할 학교를 세울 뜻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듣고 곧 학교 사업을 허락하였다.

그리고 고종은 1886년 6월 8일 인재를 배양하는 ‘배재학당’이라는 교명(校名)과 액(額, 학교 간판)을 내려 주었다.

 

 

 

 

 

 

 

 

 

 

 

 

아펜젤러 목사1858∼1902
아펜젤러 목사는 1885년 국내에 들어온 첫 감리교 선교사로미국 북장로교회 선교사인 언더우드와 함께 미국 북감리교회에서 한국에 파송한 안수받은 최초의 선교사로서 1885년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한국 감리 교회를 창설하고, 배재 학당을 설립했다. 1887년 9월 서울에 벧엘예배당(지금의 정동제일교회)을 설립, 전도활동을 벌였다.1887년에 한국 성경 번역부가 생기자 언더우드, 게일 등과 함께 성경 번역 사업에 참여하여 ‘마태 복음, 마가 복음, 고린도 전서, 고린도 후서’를 맡아 번역하였다. 1895년에는 월간 잡지 <한국 휘보>를 다시 펴내면서 편집을 맡았다. 그는 외우기 위주의 전통적인 한국식 교육 방법을 이해 중심의 교육 방법으로 고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1902년에 목포에서 열리는 성경 번역자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배를 타고 가던 도중 목포 앞 바다에서 배의 충돌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명예의전당

이승만,주시경,나도향,김소월등 우리시대의 큰획을 그은 배제인들을 소개하고 있다.

 

 

 

 

 

 

 

 

 

 

 

 

김소월(金素月)의 시집 '진달래꽃' 초판본 (문화재로 등록예고)

 

 

 

 

 

 

 

 

 

 

 

 

 

 

 

 

 

 

 

 

 

 

 

 

 

 

 

 

 

 

 

 

 

 

 

 

 

 

 

 

 

 

 

 

 

 

 

 

 

 

 

 

 

배제학당 동관(培材學堂 東館) 서울시 기념물 제16호

서울 중구 정동 34-5

070-7506-0073

http://appenzeller.pc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