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 24. 06:30ㆍ서울 어디까지 가봤니?/서울 걷기 좋은길
서울 청계천 모전교에서 버들다리까지 천천히 걸어보기
청계천은 길이 10.84km, 유역면적 59.83㎢이다. 북악산인왕산남산 등으로 둘러싸인 서울 분지의 모든 물이 여기에 모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왕십리 밖 살곶이다리[箭串橋] 근처에서 중랑천(中浪川)과 합쳐 서쪽으로 흐름을 바꾸어 한강으로 빠진다.
본래의 명칭은 개천(開川)이었다.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 청계천은 자연하천 그대로여서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물난리를 일으켰고, 평시에는 오수가 괴어 매우 불결하였는데, 제3대 태종이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벌여 처음으로 치수사업을 시작하였다. 그후 영조 때에는 준설양안석축(兩岸石築)유로변경 등 본격적인 개천사업을 시행하였다. 이 공사로서 내의 흐름이 비로소 직선화하였다.
순조고종 때에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는데 이 개천에 놓인 다리는 수표교(水標橋)오간수교(五間水橋)광교(廣橋)영미교(永尾橋)관수교(觀水橋) 등 모두 24개가 있었다. 국권피탈 후 일제강점기 초(이때에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뀌었다)에는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이루어졌다.815광복 후에도 청계천의 유지관리에 힘써 왔고, 1958년 6월부터 복개공사에 착수, 1960년 4월에 1단계로 광교∼주교(舟橋) 1∼4가 간을 완공하여 너비 50m의 간선도로를 만들었다.
1967년~1976년 청계고가도로를 건설, 상류에서 성동구 사근동까지 5.4km 구간은 복개되었으나 중랑천 합류 지점까지의 2.4km 구간은 복개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청계천 주변의 복개도로와 고가도로의 안전문제가 제기되자, 1994년~1999년의 5년에 걸쳐 남산 1호 터널에서부터 청계천4가에 이르는 길이 2,030m의 상판과 다리기둥, 들보를 보수하였다.
2002년 청계천4가에서 성동구 마장동 사이에 이르는 길이 3,834m의 상판을 교체하는 보수를 마쳤다.2003년 7월부터 시작된 서울시의 청계천복원사업 구간은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서 성동구 신답철교로 구간으로 5.8km에 이른다.
청계광장
청계천복원사업이 이루어지던 2005년 3월 서울특별시에서 지명위원회를 열어 확정한 명칭으로, 청계천의 시작 지점인 세종로 동아일보사 앞 광장을 가리킨다. 청계천으로 진입하는 공간으로서 삼색 조명이 어우러진 촛불 분수와 4m 아래로 떨어지는 2단 폭포가 설치되었다. 2단 폭포 양옆에는 8도(道)를 상징하는 석재로 팔석담(八石潭)을 조성하였는데, 밤이면 불빛과 물이 어우러져 멋진 경관을 빚어낸다. 또 청계천 전 구간을 100분의 1로 축소한 미니어처가 있으며, 4월부터 11월까지 주말마다 청계천 문화 페스티벌이 열린다.
청계천인공폭포
삼색 조명이 어우러진 캔들 분수와 4m 아래로 떨어지는 2단 폭포가 장관을 연출한다.
폭포 양 옆에는 전국에서 돌을 가져온 8도석으로 제작된 '팔석담'을 깔았다.
밤이면 빛과 물이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또, 청계천 전구간을 1/100로 축소한 미니어쳐 역시 멋진 볼거리를 제공한다.
‘행운의 동전 던지기’
청계광장 폭포 아래 팔석담에 ‘행운의 동전 던지기’이다.
이렇게 서울 청계천에 던져진 행운의 동전 개수가 100만 개가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까지 6년 2개월간 총 107만개에 달한다고 밝혔다.
청계천 ‘행운의 동전’은 모두 3.204만원을 모금했다.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나기 시작해
서울에 오면 꼭 한 번 들르는 명소 중 한 곳이 됐다
모전교
서린동(瑞麟洞)과 중구 무교동(武橋洞) 사이 네거리에 있던 청계천의 옛 다리이다.
다리 이름은 이 근처에 과일을 팔던 모전이 형성되어 있던 데서 유래하였다.
2003년 7월부터 시작된 청계천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새롭게 놓였다
광통교
종로네거리에서 을지로네거리 방향으로 나가다가
청계로와 만나는 길목의 청계천 위에 놓여있던 다리이다.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되었다.
광교 갤러리
광교 다리밑의 공간을 이용한 전시공간이다.
정조반차도 [正祖斑次圖]
정조의 화성행차를 그린 그림으로 어머니 경의왕후(敬懿王后;혜경궁 홍씨)의 환갑을 기념하여 아버지 장헌세자(莊獻世子;사도세자)가 묻힌 화성 현륭원(顯隆園)으로 행차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수표교
원래의 수표교는 1959년 청계천 복개공사 때 장충단공원으로 이전하였다.
2003년 6월 청계천복원공사의 일환으로 청계천 위에
원래의 수표교를 본 따 만든 새로운 수표교가 생겨났다.
나래교
종로구 종로5가 321번지와 중구 당산동 19번지 사이 청계천에 있는 다리이다.
나비의 힘찬 나래짓을 이미지화 하였으며, 3차원 아치와 케이블로 나비의 형상화를 유도하였다.
나비가 날개를 활짝 편 형상으로 동대문 의류상권이 세계 패션 1번지로 비상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버들다리
종로구 종로5가 319번지와 중구 을지로6가 17번지 사이 청계천에 있는 다리이다.
보행자의 이동 편리를 위해 차도와 보도를 분리하여 파고라를 설치 도심 속의 정원을 연출하였다.
버들다리위에 전태일 열사의 흉상이 있어 전태일다리라고도 부른다.
다리 이름은 과거 오간수문 상류에 왕버들이 많았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전태일흉상
전태일(全泰壹, 1948년 9월 28일 대구 (당시 대구부 남산정) 출생 ~ 1970년 11월 13일)은 대한민국의 노동자, 노동운동가이다. 1960년대 평화시장 봉재공장의 재봉사로 일하며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다 분신 자결하였다. 헌신적으로 노동자 인권운동을 펼쳤기에 “전태일이 없었다면 한국 노동자들의 인권은 수십 년 뒤에나 존중받았을 것”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과 민주주의 발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진보 진영에서는 전태일을 부를 때 흔히 ‘열사’나 ‘동지’호칭을 붙인다.
평화시장
평화시장은 한국전쟁 때 남쪽으로 내려온 북한 피난민들이 청계천 변 판자촌에서 ‘재봉틀’(미싱) 한두 대로 옷을 만들어 판매하던 데서 출발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청계천 변에서 노점상 형태로 의류를 제조·판매한 상인들의 약 60%가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들이었다. 그 후 1962년에 오늘날 건물과 유사한 현대식 건물이 들어섰으나 인근에는 여전히 판자촌이 남아 있어 여기로부터 유입된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여 가내수공업 형태의 의류제조업이 영세 업체들을 지탱시켰다. 당시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바로 청계피복노조원이었던 전태일의 분신(1970년 11월 13일) 사건을 낳은 배경이 되었다.
청계천 헌책방거리
을지로6가 평화시장 1층에 청개천변으로 형성된 헌책방거리는
70~80년대 호황을 누렸으나 점차 쇠락하여 지금은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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